시대의 변화에 음성, 구술문화, 문자, 활자, 미디어, 디지털, 공동체등과 같은 역사적 흐름과 그 시대적 의미를 생각하며, 시민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이 미디어를 통해 이뤄진다는 생각에 빠져본다.
미디어의 발전 과정 속에 시대의 변화를 보며 공동체라는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지, 커뮤니케이션은 우리가 말하는 그것(소통과 공동체) 인지….
커뮤니케이션은 미디어를 통해서 이뤄져 왔다고 한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미디어가 존재함으로써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 온 것이다. 따라서 커뮤니케이션의 발전은 미디어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초기 원시시대 인류는 손과 몸짓, 그리고 얼굴표정으로써 커뮤니케이션 구실을 했는데 이때 손, 몸짓, 얼굴 표정은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구실을 한다. 그 후 인간이 언어를 발명한 뒤 부터는 언어가 주요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구실을 해 왔다.
인쇄기 발명 이후 미디어는 급속히 발전했다. 인쇄기 발명은 책, 신문, 잡지와 같은 미디어를 만들어 냈으며, 또 20세기에 들어서 보급된 방송은 라디오, 텔레비전과 같은 미디어를 만들어 냈다.
이 같은 새로운 미디어의 확장은 인간기능의 확장이다. 따라서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커뮤니케이션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적 범위가 확대되고, 또 시간적으로도 커뮤니케이션이 동시에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토론토 대학의 교수이자 저술가로서, 매체와 매체의 의미를 선구적으로 해석한 세계적인 미디어 비평가 맥루한은 급속하게 변화하는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가장 민감하게 대응했던 학자이다. 그는 커뮤니케이션을 가장 왜곡시켰던 미디어로서 인쇄기를, 그리고 왜곡된 커뮤니케이션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미디어로서 텔레비전을 들었다.
맥루한은 텔레비전을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극찬한 반면 인쇄기는 인류 ‘최악’의 발명품이라고 혹평했다. 그것은 인쇄기의 발명이 인간 커뮤니케이션을 왜곡하고 있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쌍방향적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해짐으로써 인간적 커뮤니케이션을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전자미디어의 등장은, 특히 텔레비전의 등장은 인간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파괴된 감각의 균형을 복원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맥루한이 주장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의 다양성과 포괄성, 등은 이미 우리사회를 완전히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는 하루종일 미디어와의 소통이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텔레비전 시청, 출근하며 라디오, 각종 스프츠 뉴스, 퇴근 후에 텔레비전,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 우리는 미디어와의 일방적이고 적극적 소통을 이루며 살고 있다.
이제는 로드뷰, 페이스북, 트위터 등과 같은 실시간 미디어의 편리한 기술에 나의 사생활마저도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긍정적 과정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하지만 우리사회의 현실과 내일의 현실 또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의 온전한 지배를 받고 있고 받게 될 것이다.
통합적 미디어를 통한 건강한 소통, 커뮤니케이션을 이루려면 정부와 기업, 시민사회는 무엇을 고민해야하고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시민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을 미디어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개발로 시민사회는 물론 국가와 지역을 초월한 건강하고 광범위한 지구촌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