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부음을 듣고 안타깝고 숙연해 질 때가 있다.
故 안경모 선생. 교통부장관과 수자원 공사 사장을 지냈는데, 공직합산(公職合算)이 44년 10개월이다.
고인이 됐고 또 지나간 벼슬이야 부질없는 일이지만, 최고 존경 의미를 담은 선생으로 부르고 싶다.
몇 년 전인지, 어느 잡지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데, 제목은 ‘전직 장관 식당 개업’ 이런 인터뷰 기사를 봤다.
요식업(料食業)을 얕보는 것이 아니라. 전직 장관께서 무슨 사연으로? 설마 호구(糊口)를 위해서, 아니면 궁상(窮狀)!
지나친 것은 모두 어색하다. 없는 사람이 있는체를 해도 꼴불견이지만, 있는 것을 감추려해도 그것역시 마뜩지 않다.
연금(年金)도 상당할 텐데, 왜?
장관 퇴직한 분이 운영하는 식당이니 의례적 실내 장식이 번쩍 번쩍하는 고급음식점으로 짐작했는데, 사진으로 본 규모는 테이블 너다섯개에 학교 앞의 쉽게 볼 수 있는 분식집을 연상케 했다.
안경모 선생을 가르켜, 변영태 총리 이후의 최고의 청백리로 꼽는다. 평소 검약 정신이 몸에 배여 작업복을 즐겨 입고, 출장 여비도 꼼꼼히 챙겨서 남으면 반납을 하는 등 구두쇠적 이야기가 공직 사회에 아직도 전설로 남아 있다.
퇴임 할 때 수자원 공사에서 59.5㎡(18평)짜리 사원 아파트를 임시로 빌려 줬으나, 자녀들이 아파트를 사드리자 즉시, 임대 아파트를 반납했다고 한다.
그 식당은 호구지책(糊口之策)이었던 것이다.
인터뷰 기사 가운데, “마누라와 함께 무엇을 할까 궁리하던 중 고등학교 시절을 일본에서 고학을 했을 때의 배고픔, 그리고 대덕 단지 연구원들과 담소를 나누며 선배의 경험을 나눠주고 싶어서 식당을 열었노라”.
기업 보국(企業 保國)이니 하는 어느 재벌의 창업 정신보다 식당개업 동기가 순수하지만 고귀하다.
그리고 연구단지가 방학에 들어가면 그 기간 동안 부부가 여행 다니는 재미도 쏠쏠하고…, 지금이 인생에서 제일 행복하다고….
우리나라의 중요한 국토 계획은 대부분 안경모 선생의 손을 거쳤다고 한다.
경부고속도로 그리고 홍수가 잦았을 때 다목적 댐 위치설정 오죽했으니 수자원 공사 사장을 6차례나 연임하고(총 15년 1개월) 파리 목숨이라는 장관직(교통부장관)을 3년 3개월이나…, 실력없이 청렴하다고만 이처럼 장수할 수 있을까?
박정희 대통령은 안경모 선생을 ‘건설 국보(國寶)’라고 공공연히 자랑했다고 한다.
결국은 실력과 공직자의 자세가 남달라서 서슬 퍼렇던 전두환 정권에서도 자리를 유지했다고 한다.
44년 10개월 동안 겨우 공직을 맡지 않은 기간은 2개월 8일.
모든 것을 믿고 맡기는 상관에게 부하는 믿음에 충실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법이다. 이런 상사와 부하의 관계는 향기가 나는 법이다.
퇴임 이후에도, “박 대통령이 나보다 더 많이 깊이 알고 있어, 지시하는 것을 따라가자니 제일 힘들었다”며 우직한 겸손함!
몇 년 전, 수자원 공사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다목적 홀이라고 이름 붙인 방 귀퉁이에 안경모 선생의 흉상(胸像)이 있었다.
“웬 살아 있는 사람의 흉상을….”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흉상설립을 반대한 사람이 거의 없었단다.
박정희 대통령과 안경모 선생, 그리고 진정한 선배를 스승으로 모시는 수자원 공사 직원들…. 하여간 배반을 쉽게 생각하는 요즈음. 모두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장관을 지냈으므로 럭셔리 한 식당을 상상했던 편견(偏見) 그리고 오해(誤解)가 나의 한계(限界)인가?
왜 항상 그 수준인가? 답답한 노릇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