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독일은 통일 20주년을 맞이했다. 마침 지난달 21~25일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의 철도박람회인 이노트란스(InnoTrans)에 참관할 기회가 있어, 통일의 현장인 베를린 현지에서 독일 통일의 역사와 감동, 언론과 국민들의 소회 등을 느껴 볼 수 있었다.
베를린은 지리적으로는 동독에 속해 있었지만, 2차 대전의 4대 전승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이 독일을 분할하면서 수도였던 베를린도 4개 지역으로 분할했다가, 3개 서방연합국 주둔지역은 통합돼 서베를린으로, 소련 점령구역은 동베를린으로 분리돼 그 자체로서 분단의 비극을 상징했었다. 게다가 지난 1961년 소련은 동독주민의 서베를린으로의 탈주를 막기 위해 브란덴부르크 성문을 중심으로 3m 높이의 베를린 장벽을 쌓아올려 대립과 희생의 산증인이 됐다.
동·서독간 국가계약을 통해 공식적으로 독일의 통일이 이뤄진 것은 1990년이지만, 실질적인 통일의 물꼬는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에서 시작됐고 수도 천도까지 이뤄져 베를린은 이제 독일 통일의 상징이 됐다. 자유를 갈망하는 동독 주민들이 손에 손을 잡고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며 서베를린 쪽으로 행진함으로써 독일의 무혈 평화 통일이 이뤄졌던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독일 통일에 관한 뉴스는 주로 독일 국민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통일을 이룩했지만 다양한 통일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무엇보다 통일 비용이 당초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사회적 갈등과 논란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통일 당시 서독 정부는 통일비용으로 통일 후 5년간 1천150억 마르크(800억 달러)면 충분할 것으로 예측했지만, 지난 20년 동안 당초 예상의 30배를 웃도는 2조 유로(약 3천조 원)가 투입됐다고 한다. 게다가 이러한 투자에도 여전히 생산성, 실업률 등 여러 지표에서 동·서독간에 커다란 경제적 격차가 상존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반세기 가까운 단절로 인한 사회·문화적 의식 차이와 동서독 주민들 간의 위화감 또한 큰 문제였다.
통일 초기에는 서독 출신과 동독 출신이 서로 베시(Wessi)와 오시(Ossi)로 상대를 비하하면서 지역감정이 노골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베를린에 가보니 독일은 지난 20년 동안 이러한 수 많은 난관들을 잘 극복해 냈음을 알 수 있었다.
독일의 현 수상 메르켈을 비롯해, 동독 출신 인사들이 사회각계 각층에 진출해 있어 지역 균형 인사가 잘 이뤄진 것처럼 보인다.
분단시 최접경지역으로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었던 브란덴부르크성문 광장 바로 앞은 서방 승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대사관이 자리 잡았고, 역시 베를린 장벽이 가로 질렀던 포츠담플라츠에는 세계 최고 기업들이 진출해 경제와 문화 일번지로 바뀌어 있었다.
또 베를린에서도 가장 땅값이 비싸다는 브란덴부르크 성문 바로 앞에 2차대전시 학살된 유대인을 위해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을 조성해 놓음으로써, 분단을 자초한 전범국가로서 독일의 ‘원죄’를 참회하는 자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철도인으로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베를린 중심부 공공기관 클러스터의 한 복판에 웅장한 베를린 중앙역과 독일철도공사(DB AG)의 초현대식 사옥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전국구석 구석을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철도망을 갖춘 세계 최고의 철도 강국다운 면모다.
내가 만난 독일인들은 한결 같이 통일을 완성해 낸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물론 통일 후 어려움도 많았지만, 통일을 통해 얻은 것에 비하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것이었다며, 우리나라도 한시 바삐 통일을 이루기를 기원했다.
통일을 이루고, 유럽 최강국으로 거듭난 독일 국민들의 모습을 부러운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독일 통일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되돌아봤다.
독일이 통일후유증을 성공적으로 극복해 내는데는, 국가 주요 아젠다에 대한 국민통합과 분단기 동안의 철저한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46명의 우리 젊은 장병들이 희생된 천안함 사건, 북핵문제, 개성공단 폐쇄 등 남북관계는 여전히 갈등과 긴장으로 점철돼 있고, 비단 남북문제 뿐 아니라, 국가적 이슈마다 우리 사회의 사분오열현상이 극심하다. 국가발전을 위해서나 국민염원인 통일을 위해서도 우리나라 국가 지도자들의 통합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