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겨울 어느 날, 이탈리아 일간지 ‘일 지오르날레(Il Giornale)’는 밀라노에 있는 한 시립양로원의 원장이 청소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의해 구속영장을 발부 받았다는 짤막한 기사를 실었다. 기사를 접한 시민들은 시 공무원과 업자 간에 흔히 있을 수 있는 그저 그런 사건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이 조그만 사건으로 인해 1948년 이래 45년 간 정권을 계속 장악해 오던 기민당-사회당 연립정권이 막을 내릴 줄은 아무도 몰랐다. 밀라노 지방검찰청 소속의 평범했던 한 무명검사인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가 지휘했던 양로원 부정사건은 수사가 진전됨에 따라 정부요직의 인사들이 개입되는 등 단순한 부정사건이 아니었음이 밝혀지게 된다. 밀라노 검찰은 피에트로 검사를 중심으로 사정검사 팀을 조직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이때 이탈리아 국민들은 밀라노 검찰을 ‘마니풀리테(manipulite,깨끗한 손)’라 부르며 열렬히 지지했다.
수사가 정점으로 치달으면서 당시 집권당내에서 제 1당인 기민당과 함께 양대 세력을 이루고 있던 사회당 핵심지도부와 현직 장관들이 정경유착형 부정부패에 연루돼 있음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한다. 당시 이탈리아의 주요 신문들에서는 연일 ‘마니풀리테’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했으며 수사가 진전될수록 집권당은 더욱 곤경에 처하기에 이른다. 급기야 사회당 당수이며 총리까지 지낸 베티노 크락시를 비롯해 현직 장관들이 검찰수사 명단에 오르고, 이탈리아 국민들로부터 부정부패의 원흉으로 낙인찍힌 크락시는 구속 하루 전 아프리카 튜니지아로 야반도주를 한다.
이대엽 전 성남시장 재임 당시 성남시청 공무원들이 저지른 각종 비리 사실이 서서히 베일을 벗고 있다. 관급 공사를 따내기 위해 업체 관계자들은 공무원과 이 전 시장 조카에게 뇌물을 주고 공사를 따냈고, 공무원들은 인사 청탁을 위해 실세로 불리던 이 전 시장 조카 부부에 줄을 대기 급급했다고 한다. 참으로 한심스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이참에 한국판 ‘마니풀리테’가 나서서 비리를 낱낱이 밝혀냈으면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어디 성남시 뿐 이겠는가.
/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