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과 함께 강화를 여행하게 됐다. 사실 강화는 내가 가장 즐겨 찾는 나들이 코스이기도 하다. 한 달에 많게는 서너 번의 마리산 산행에서부터 강화해변의 산책, 오래된 절들을 순례하듯 돌며 ‘삶의 나그네처럼 나를 길가로 내모는 일들’이 이제는 내 생활의 일부가 됐다.
그리고 역사의 순간마다 선현들의 치열함이 배여 있는 강화는 내게 가끔 치열함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날 우리는 고려산과 맞닿아 있는 혈구산을 등반했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야트막한 산이었으나 골이 겹겹이 에워 쌓여 있고 예전에는 골마다 절들로 넘쳐 났다는 안내판을 봤다. 워낙 늦게 출발해 오르게 됐으나 그리 험하지도 않고 짧은 산행 길을 선택해 산책하듯 손쉽게 등반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평소에 다니지 않던 길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가던 길에 ‘단군’을 받든다는 단체(?)가 있어 들어가 봤다.
강화를 20여년 넘게 다녔는데 처음 보기도 했고, 혹시 이상한 종교단체는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상고사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단군’이라는 단어를 통해 발걸음을 이끌게 했다.
어둠이 내리는 늦은 시간 방문하게 돼 그곳에 계신 분들과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으나 ‘단군’과 ‘홍익인간 재세이화’로 이어지는 흔한 국사교과서의 이야기들이 내게 낯설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시월이 되자 개천절과 관련한 다양한 행사와 내용들이 홍보되고, 부여에서 있었던 개천행사에 참여하자는 제의를 받았으나 개인적인 일정이 겹쳐 갈 수 없었다.
나중에 들어 보니 많은 사람들이 참여 했고 의미 있었다고 했다. 이제까지 정부에서 중개 해주는 공식적인 개천절 행사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크고 작은 단체에서 개천절과 관련한 행사를 하고 있었다.
하늘이 열렸다는 의미의 ‘개천(開天)’은 단군조선의 건국보다 124년 앞서 단군의 아버지인 배달환웅께서 환인의 천명을 받아 처음으로 하늘 문을 열고 백두산에 내려온 날로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하고 이치로서 세상을 다스린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이화세계(理化世界)’의 정신으로 백성을 다스렸고, 이 이념은 이후 우리나라의 정치·교육이념을 이루는 뿌리가 됐다.
매년 음력 10월 3일에 행해지던 개천절 행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49년부터 양력 10월 3일로 바뀌었다. 수 천 년 이어오던 행사가 양력과 음력의 차이에서 오는 번거로움을 간소하게 하기 위해 양력으로 바꾼 듯하다.
그리고 음력 10월 3일은 개천행사를 뺀 제천의식만을 거행하기도 한다. 하늘 열림의 기쁨과 나라의 안녕, 농경사회의 풍년을 기원하던 축제의 형식은 분리돼 진행되며 선조들이 추구하고자 했던 세계관이 축소된 감이 없지 않다.
곰과 마늘, 쑥으로 이어지는 신화적 요소들은,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역사적인 상징으로 재해석이 필요하며 연계성을 찾아내는 활동이 꾸준히 계속돼야 한다.
또한 단군신화를 계급지배의 수단이라 비난해오던 북한 역시 1993년 10월 단군릉 발굴과 함께 1995년부터 해마다 10월 3일에 개천절 행사를 치르고 있다.
하나의 세계관을 통해 흩어져 있던 사상과 이념들을 아우르고, 통합해내며 상처받았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훌륭한 치료약이 먼 상고사를 통해 우리 가슴으로 이어 오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분단의 아픔으로 통곡하는 광경들은 사라져야 하며, 수 십 년의 세월을 가슴앓이로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의미에서 인간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품어 낼 수 있는 기게도 새롭게 복원해야 한다.
나라 안팎이 복잡하게 얽히고 꼬여있다. 이럴 때 정치하시는 분들도, 행정하시는 분들도, 법을 집행하는 분들도 ‘하늘을 연다’는 개천(開天)과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 (在世理化)의 선조들이 남겨준 큰 뜻을 마음 속 깊이 새겨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며칠 있으면 음력으로 10월 3일 개천절이다. 옛 선조들이 하늘을 경외하며 늘 잊지 않고, 펼치고자 했던 큰 뜻이 모두에게 펼쳐지길 바라며, 청명한 가을 하늘을 우러러 마음을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