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묵자(墨子)’하면 ‘겸애(兼愛,평등한 사랑)설’정도로만 이해한다. 그러나 ‘공묵(孔墨)’이란 말이 있듯이 유가(儒家)의 정통이었던 당의 한유(韓愈)는 공자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묵자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 쪽 벽만 보고는 그 골짜기를 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순자(荀子)는 묵자를 ‘노동자의 도’라고 말했다. 묵자야 말로 2천500년 전 인류 최초로 반전 평화운동과 문화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한 진보주의 사상가이며 노동자의 원조라는 얘기다. 그러므로 보수를 알려면 공자를 읽어야 하고 진보를 알려면 묵자를 읽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묵자에 대해 그가 동이족이 세운 고죽국(孤竹國) 사람이라는 설이 있다. ‘당서(唐書)’에는 고죽국이 고려의 뿌리라고 적혀있다. 그렇다면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묵자는 목공과 수공업자로 일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제자들은 대부분 사회의 하층 민중이었다. 묵자는 그들을 모아 기율이 엄격한 단체를 조직했으며 각 제후국을 떠돌며 유세를 했다. ‘회남자淮南子’에는 “공자와 묵자의 명성은 영토가 없었지만 천자의 지위를 누렸고 천하를 두루 유묵(儒墨)에 기울게 했으며, 묵자를 따르는 무리는 180명인데 섶을 짊어지고 죽을지언정 물러서지 않았다”고 전한다.
지난 13일 남양주시 모란공원 민주묘역에서 전태일 열사 40주기 추도식이 열렸다. 서울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분신자살했다. 이 사건은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고, 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날 추도식에 참석한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40년간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웠지만, 과연 이뤄진 일이 무엇인지 정치인으로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로지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적 편 가르기로 인한 것이었다면 옹졸한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공공연한 말까지 도는 요즘이다. 묵자는 ‘천하무인(天下無人)’, 즉 ‘천하에 남이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묵자의 ‘겸애’는 후손들로 인해 무색해질 수 밖에 없다./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