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자못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제1회 대중문화예술인의 날’ 선포식이 있었기에 그렇다.
이 자리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 처음으로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을 제정하고 32명을 시상했다. 대중문화예술상의 최고 영예인 보관문화훈장은 희극인 임희춘, 배우 신구, 성우 고은정씨가 받았다.
이 밖에도 가수, 작곡가, PD, 연주가, 만화가, 모델 등이 대통령, 국무총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한국콘텐츠진흥원장 등의 표창을 각기 받았다. 현재 활동하는 대중문화예술인 뿐만 아니라 작고한 가수와 방송PD도 포함됐다.
사람을 불러 모으는 대중문화예술의 진가를 뒤늦게나마 공식적으로 인정한 자리이기에 그 어느 행사보다도 더더욱 의미가 깊다. 그동안 저질스럽다거나 이런저런 핑계로 푸대접 받아온 것이 대중문화예술 장르다.
대중은 모든 신분의 사람을 포괄한다. 각 개인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고 그 구성원은 서로 고립돼 상호작용을 하지 않고 사회 조직성을 갖지 않는다. 우리에게 쉽게 다가서는 것, 그것이 바로 대중문화예술이다.
내가 좋아 하는 가수나 탤런트는 라디오나 TV의 단추만 누르면 나타난다. 대중문화예술의 범주에 속하는 것은 라디오, TV 영화, 비디오, 잡지, 만화, 전자오락 등이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이 대중문화예술이다.
이제 대중문화예술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예술의 대중화’라는 구호를 내걸고 고급문화예술은 물론 전통문화까지 생존을 위해 대중문화예술과 손을 잡는 일이 점차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을 정도다.
인간이 놀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다. 그렇다면 대중이 갈 길은 예정돼 있는 셈이다.
최소한의 비용이거나 비용이 필요 없는 놀이는 대중문화예술이다. 대중가요도 그 중 하나다. 그래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곳이 노래방이다.
우리의 대중문화이자 생활 문화의 일부로 뿌리를 내렸다. 늘 대중가요의 ‘수동적 소비자’로만 존재하던 사람들이 노래방을 통해 ‘능동적 생산자’의 위치로 격상 될 수 있다고 하는 건 이만저만한 매력이 아닐 수 없다.
대중문화예술이 주는 재미와 즐거움의 가치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보다 좋은 재미와 즐거움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을 놓고 고민해야 한다.
수용자의 능동성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능동성을 발휘하는 주체의 가치관도 중요하다. 물론 진정한 재미와 즐거움이 있는가 하면 얄팍한 재미와 즐거움도 있기에 그러하다.
대중문화예술인들은 ‘살아 움직이는 광고 탑’으로도 기능한다. 그들 자체가 곧 유행이다. 은유적 표현이 아닌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이미지를 판매하기도 한다. 이미지는 늘 실체에 접근하고자하는 갈증을 유발시키기 마련이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의 미래는 여가를 어떻게 수용하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각종 기술의 눈부신 발달은 현대인의 여가시간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증가시켰다. 그 늘어난 시간을 가장 많이 차지한 주인공이 바로 대중문화매체인 TV다. 두말할 필요 없이 여가문화는 대중문화예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자발성과 창의성이 없는 여가문화가 판을 치는 사회의 대중문화는 문제가 많다. 대중문화가 뿌리내릴 수 있는 바탕이 생존이 아니라 생활이라고 할 때 대중문화예술의 토양은 척박해 질 우려가 있다. 많은 국민들이 예술 또는 문화 공간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잠을 자고 있다면 그러하다.
대중문화예술인의 날 제정을 기해 일회성 행사가 아닌 긴 안목으로 대중문화예술의 육성을 위한 예산지원을 대폭 늘려가야 할 것이다.
대중문화예술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꾸고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대중문화예술의 육성에는 인적자원도 대단히 중요하다. 기존의 교육시스템도 점검해 봐야 한다.
대중문화예술은 생산자들의 건전한 양식과 수용자들의 올바른 자세가 갖춰질 때에 우리 사회에 보다 유익한 성장 동력으로 커 갈 수 있다./김훈동 수원예총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