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법원의 가사상담위원 활동의 일환으로, 지난 6월부터 이혼소송중인 사건을 맡아 상담과 조정을 진행해 오면서 다양한 사례를 경험할 수 있었다. 지난주까지 내가 맡고 있던 사건이 모두 종료됐다.
아마도 올해에는 사건을 더 이상 맡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렴풋하게 예산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매주 하던 상담을 잠깐 쉬고 ‘긴호흡’을 하고 싶은 마음도 들기 때문이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느꼈던 것들도 많았고 생각하게 하는 지점도 많이 있었다. 여러 쌍들의 이혼사유를 보면서 혹은 이혼중인 부부들의 대화를 들으며 어떤 부부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 이야기나 내용이, 다른 부부에게는 치명적인 사유가 된다는 사실 앞에서, 간단하면서도 쉬운 이 문제를 상담하는 나로서는 내내 괴로운 문제였으며 해결해야 될 과제처럼 느껴졌다. 각자의 경험 속에서 이해되는 생활의 문제를, 상담하는 입장에서 과제로 느낀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전문가로서 낙제일 것이다.
사회적 환경과 제도는 너무 많이 변해 있는데 이혼에 직면한 이들은 그들의 아픔과 갈등, 분노에 빠져있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사회는 알게 모르게 제도적으로 선진적인 내용을 갖고 있으나 우리의 의식이 따라가지 못하는 측면을 갖고 있다. 이혼을 위한 준비를 하기 보다는 갈등으로 느끼고 생각하는 고통을 마음의 짐으로 지고 있으며, 어떤 경우는 자신의 짐을 상대에게 덧씌우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아이들을 교묘하게 이용해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더하기도 한다. 해서 상담을 하다 보면 안타까운 경우도 있고, 속상한 경우도 있으며, 가슴 아픈 사연이 이어진다.
9월초에 시작해 지난달 초 까지 9회의 상담을 끝으로 상담과 조정을 잘 마무리한 부부가 있다. 여느 부부와는 다르게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이기까지 했던 이들은 상담이 진행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부부한쪽의 일방적인 태도에서, 친정오빠의 억압적인 모습을 투사하며 힘들어 했고 죽고 싶었던 사춘기의 생각들이 복잡하게 얽혀 들어왔다. 다른 한쪽은 우유부단하고 어느 것도 결정 내리지 못하는 태도에서 답답해하며 힘들어 했고 아내와 엄마로서 의심을 하게 되며, 급기야 서로 다른 관심과 상대를 찾아, 외도를 의심케 하는 행동들과 소비를 통한 자신의 표현들은 서로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어쩌면 영혼도 상처를 받았으리라.
결국 남편의 재결합의지가 강하게 있었음에도 아내는 이혼을 선택했고, 이혼을 선택한 아내에 대해서도 남편은 기꺼이 받아 들였다.
늘 상담 말미에 상담 받으면 며칠은 마음이 편하다가도 아이가 잠들고 난 이후 혼자 덩그마니 남겨진 방안의 적막함에 우울증이 올 것 같다던 남편이었다. 차라리 일이 바쁘면 일에 취해 마음이 편하다던 이었는데, 아이를 가운데 두고 서로 부모로서 책임을 하겠다며 친권과 양육권을 놓고 한참을 실랑이 벌이다 결국 모두 아빠에게 주고 엄마는 면접교섭을 착실히 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한참 침묵이 흘렀다. 이어지는 재산분할 과정에서 이런저런 사유로 전혀 진척이 없었다.
상담 마지막 날 그동안 잘 정리됐던 생각이나 내용까지 뒤틀리고 깨지려 했던 순간, 나는 눈물을 쏟으며 당신들이 정말 아이를 위하는 부모인가를 반문했다.
정말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가 되물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두 사람이 소통을 잘하는 부모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부부로서의 인연은 다했지만 죽을 때 까지 부모로서의 인연은 끊어 낼 수 없는 천륜인데 두 사람이 아이를 위한 마지막 선물로 소통을 잘 해낼 수 있는, 이혼한 부모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갑작스런 눈물과 질문에 당황스러워 했으며 상담실을 금방 눈물바다가 됐다. 그리고 재산분할 과정은 양쪽의 양보로 쉽게 조정합의 됐다.
아이 아빠인 그가 조정합의문을 쓰면서 꼭 넣어 달라는 문구가 있었다.
한 달에 한번은 면접교섭하면서 세 식구가 식사하자고 했다. 아내도 승낙을 했다. 이혼하는 마당에 한 달에 한번 식사를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오히려 미래를 위해 써넣었다.
판사님이 뭐라 하든 그들 가족만의 사인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서, 혹시 그들만의 헤어지는 방식일지 몰라서./김미경 갈등관리조정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