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급변해 우리들은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는 많은 정보를 시간에 쫓겨 처리하고 매순간 중요한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는 초스피드 시대에 살고 있다. 여기서 우리들은 시대에 뒤떨어 지지 않기 위해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 중에서 시간 관리의 중요성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우리는 시간에 대해 너무도 관대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
우리들의 결여된 시간관념에 대한 인식이 코리안 타임이라는 자랑스럽지 못한 타이틀을 탄생시킨 게 아닌가 생각돼 진다. 코리안 타임이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국의 북위 38도선을 기준으로 이북으로는 소련군이 진주하고 이남으로는 미군이 진주했다. 군정을 통해 모든 기관을 통치하던 당시 우리 국민들의 시간관념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희박했었다고 한다. 헐벗고 가난해 하루살기가 어려웠던 시절 시간관념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어떠한 모임이나 약속장소에 지정된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나오는 것은 다반사였다. 일분일초를 다퉈 가며 생사를 건 전쟁을 치르던 한국 주둔 미군이 모임을 소집하면 시간에 맞춰 나타나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미군들이 시계를 쳐다보고 한숨을 쉬며 한 소리가 코리안 타임이었다고 전해진다.
우리는 한정된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해야 한다. 우리에게 부여된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내고 헛되이 사용한다면 이 또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웰링턴은 영국의 정치가이며 바테를로 전쟁에서 나폴레옹을 격파한 장군이기도 하다. 그는 시간에 있어서 매우 철저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한번은 어느 고관과 런던 다리 근처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돼 있었다. 그날 웰링턴 장군은 정시에 약속장소로 나갔다. 그러나 그 고관은 5분이 지나서야 왔다.
장군은 시계를 보면서 “5분이나 늦었군”하고 불쾌하게 말했다. 그러나 지각한 고관은 “각하 겨우 5분밖에 늦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장군은 “겨우 5분이라고? 그 시간 때문에 우리 군대가 패전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오, 5분의 시간이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라고 타일렀다. 장군은 그 후에 또 그와 약속을 했는데 그 고관은 이번에 5분 일찍 나와서 장군을 기다리다가 “각하 어떻습니까? 이번에는 제가 5분 더 일찍 나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웰링턴 장군은 이번에도 역시 이렇게 꾸짖는 것이었다. “당신은 5분의 가치를 모른 사람이오, 5분이나 일찍 왔으니 아까운 5분을 낭비한 것이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정시에 모임에 참석해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허비한 시간을 합하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될까 궁금하다.
누구에게도 그 시간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가 없다. 돈에 관해서는 지나치게 인색하면서도 시간은 헤프게 낭비 하고 헐렁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은 시간이 돈보다 귀하다.
돈은 쓰고 남으면 은행에 예치해뒀다가 다시 찾아 쓸 수 있고 또 이자까지 붙어 나오지만 시간은 일회적이고 순간적이어서 한번 놓치면 영원히 잃어버리고 마는 것 이다. 시간은 한번 흘러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고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성패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시간이 생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의지가 시간을 지배하며 자각적인 결의가 시간의 내용을 창조한다고 했다. 이는 인간이 시간의 주인이 되는 바람직한 시간관에 대한 의미라 여겨진다. 시간에 의미를 더해 주는 것은 인간 의지의 소산이며 시간 그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고로 하이데거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대해 알뜰하게 관리하고 보람되고 값지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각종 모임으로 인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약속이 많은 연말이다.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 없이 의미가 있는 일이겠지만 그동안 흘려버린 시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고 그저 유행처럼 여기는 무분별한 모임 약속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고 시간의 소중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조용한 연말이 됐으면 한다. 아울러 나의 잘못된 시간 개념으로 인해 타인의 소중한 시간까지 허비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강준의 용인대학교 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