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호철 선생은 동지(冬至)가 좋다고 했다. 그 날을 기점으로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때문이다. 밤이 너무 길으니 너무 답답하고 지루하다고 말하는 선생은 올해 나이 일흔 아홉인데도 여전히 현역을 자랑하는 대단한 노익장(老益壯)이다. 요즘도 만보기를 허리춤에 차고 수시로 체크하는 것은 물론이고, 등산과 요가로 건강을 챙기는 선생이다. 이를 두고 문학평론가인 정규웅은 북에서 혈혈단신 월남한 탓에 자신의 몸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자기방어력이 선생을 지탱해준 힘이 됐을 거라고 말한다.
어찌 됐든 이 날은 예부터 ‘태양이 부활하는 날’로 경사스럽게 여겨왔다. 동지는 24절기 중 하나로 1년 중 가장 밤이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밤이 가장 길어 음(陰)이 극에 이르지만, 이 날을 계기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해 양(陽)의 기운이 싹트는, 사실상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다. 중국의 역경(易經)에는 태양의 시작을 동지로 보고 복괘(復卦)로 11월에 배치했다. 따라서 중국의 주(周)나라에서는 11월을 정월로 삼고 동지를 설로 삼아 ‘작은 설’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속담에 ‘동지 팥죽을 먹어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있는데 팥죽을 먹을 때 나이 수만큼 새알심을 넣어 먹는다. 팥은 붉은 색깔을 띠고 있어서 축사(逐邪)의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 역귀(疫鬼) 뿐만 아니라 집안의 모든 잡귀를 물리친다고 믿어 동짓날에 팥죽을 쒀 집안 곳곳에 뿌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 날 팥죽을 먹는 것은 벽사의 의미보다는 겨울철 건강을 지키려는 지혜가 숨어 있다. 팥에는 수분 배출을 돕는 사포닌 성분과 부기 조절에 관여하는 칼륨이 함유돼 있어 이뇨작용을 원활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혈액순환에도 좋기 때문이다. 같은 동짓날이라 해도 초승에 동지가 드는 ‘애동지’에는 팥죽을 먹지 않고 대신에 시루팥떡을 해먹는다. 올 동지는 음력 11월 17일인데다 팥죽을 먹는 정시(正時) 또한 밤 9시 4분으로 ‘노(老)동지’에 해당한다. 송구영신(送舊迎新)하는 마음으로 가족들과 따끈한 동지팥죽을 먹으며 건강도 챙기고, 한해의 액운을 훌훌 털어버렸으면 한다./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