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5도가 대한민국이 관할하는 영토가 된 것은 지난 1953년 휴전협정 당시 미국이 세계 최강의 미 해군 건설에 전략적 개념을 제공한 앨프리드 마한(1840~1914) 제독의 ‘육지는 잃는 한이 있어도 바다는 잃어서는 안된다’는 전략에 따라서 서해 5도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반면 북한은 남한의 빨치산과 이를 지원하는 지상군 개념에 몰두하고 있어서 서해5도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이에 동의했었다.
그러나 해상은 휴전협정 당시 양측이 관할권을 명시하는 분계선을 명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엔군 사령부측이 같은해 8월에 서해5도로부터 3해리가 되고, 서해5도와 북한 옹진반도 사이에 대략 중간선이 되는 것을 설정했다. 이것이 북방한계선(NLL)이다. NLL은 설정 당시 북한 측에 통보됐고, 북한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1970년대 들어서 12해리 영해가 국제적으로 일반화 되면서, 북한도 문제제기를 시작했고, 이 일대에서 의도적인 긴장을 조성해왔다. 하지만 새로운 국제 법을 따라도, 우리도 서해5도를 기점으로 12해리를 그어야하기 때문에 연평도와 소청도 사이의 중간 수역일부를 빼고는 결국은 중간선이 분계선일 수 밖에 없다. 특히 NLL 책정이후 20년 동안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고,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남과 북의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해온 구역으로 한다’고 명시했기 때문에 북한이 NLL을 인정했다고 볼 수 있다.
군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연평도를 포함한 서해5도는 북한의 해주만 강령만, 대동만을 봉쇄해 수도권의 안전을 보장하는 전략적 거점이다.
특히 북한 해군과 공군의 작전활동을 크게 제한시키고, 유사시 옹진반도에 대한 상륙작전을 통해 북한의 전선을 차단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목에 겨눠진 비수로 볼 수 있다. 북한의 NLL 무력화 시도는 서해5도의 전략적 중요성에 대한 뒤늦은 후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NLL이 무력화되면 서해5도의 전략적 가치가 상실되고, 인천은 물론이고 서울도 위험해진다.
올해만 해도 북한은 1월 하순 서해 NLL부근에 해안포를 수 백발 발사했고, 3월 26일 천안함을 공격해서 격침 시켰으며 11월 23일 연평도를 무차별 포격했다. 지난 20일 오후에 있었던 우리 군의 연평도에서의 포사격 훈련에 대해 북한이 즉각적인 도발은 못했지만, 앞으로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도발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예상되고 있다.
역사의 경험에서 볼 때, 도발의 고리를 끊으려면 대한민국은 단호한 대응을 해야 한다.
독일이 1938년 3월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면서, 체코 침공 가능성이 높아지자 유럽의 강자인 영국은 독일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게 됐다. 특히 독일의 공군력을 과대평가했으며, 이것은 공습공포증으로 이어졌다. 같은 해 9월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해 수데텐란트 지역의 할양을 요구하자, 영국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독일군의 수데텐란트의 점령을 인정하는 뮌헨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독일은 다음해인 1939년 3월 체코슬로바키아의 나머지 영토를 합병하고 9월에는 폴란드에 침입해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이 당시 영국의 선택은 강대국이 다른 강대국의 위협에 굴복한 아주 보기 드문 사례이다. 특히 뮌헨협정 당시 독일은 영국을 직접 폭격할만한 공군력이 없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에, 체코슬로바키아를 희생시킨 것은 2차 대전을 미리 예방하고 막대한 인명피해나 물질적 손해 없이 히틀러의 독일 팽창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 것으로 지적된다.
뮌헨회담은 국제정치에서 유화 정책의 위험한 선례로 자주 거론된다. 이번에 연평도에서 있었던 우리 군의 훈련은 북의 어떠한 도발에도 우리 영토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며, 북이 다시 도발해 올 경우 강력히 응징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가 담겨 있어서 의미가 각별하다. 영국의 경험을 잊어서는 안 된다. /홍일표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