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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장욱진 화백

오래 전 화가인 내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형도 이 다음에 장 선생님처럼 늙었으면 좋겠어.” 용인 마북리에 살던 장욱진 화백을 만나고 와 서였다. 말년에 그의 모습은 ‘오래된 미래’가 있는 ‘라다크’에나 있을 법한 현자(賢者)의 모습이다. 속세에 때 묻지 않은 천진무구한 얼굴 표정은 달관한 예술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아버지는 평생 그림 아니면 술로 인생을 보내셨어요. 한번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한 달 내내 소금을 안주로 삼아 드시곤 했죠. 술에 취하시면 그냥 ‘너는 뭐냐, 나는 뭐냐’라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이는 아마도 화가로서의 외로움이 유별나 술에 의지하며 사신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순수를 추구했던 장욱진(張旭鎭·1918∼1990) 화백의 큰딸 장경수는 아버지를 이렇게 회고했다.

충남 연기 태생인 장욱진은 도회지의 생활을 유난히 힘들어했다. 그 때문에 덕소에서 수안보로, 다시 그 떼만 해도 시골이나 다름없던 용인으로 거처를 옮기며 작업을 했다. 이러한 자연의 침묵이 선문답(禪問答)과도 같은 내적 대화를 가능케 했다는 그도, 그러나 자녀들의 등록금을 낼 때가 되면 가장으로서의 미안함은 어찌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나는 그림을 그린 죄밖에 없다’라고 말하시곤 했어요.” 그러나 딸에게 항상 해준 말 도 있다. 모든 사물을 친절하게 보라고. 데면데면 지나치면 잡념이 섞여 순수하지 못하다고.

장욱진의 장인은 역사학자 이병도다. 그러나 이병도는 사위를 평생 인정하지 않았다. 그가 인정받는 화가라는 것도 지인을 통해 알았을 정도다. 장욱진은 이런 처가를 두고 “처가는 다들 박사야, 사람은 나 하나야”라고 말하곤 했다. ‘심플한 삶’의 전형을 보여줬던 장욱진은 늘 “내 할 일 다 하면 떠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죽음을 예감한 듯 장욱진은 마지막 작품 ‘밤과 노인’에서 자신을 속세를 떠나 달과 함께 하늘을 훨훨 주유(周遊)하는 도인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두 달 뒤인 1990년 12월 27일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예감처럼 하늘로 떠나갔다. “그림은 나의 일이요, 술은 휴식”이라던 ‘소박한 화가’ 장욱진의 20주기 회고전이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14일부터 다음 달 27일까지 열린다. /이해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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