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羅蕙錫·1896~1948)을 기리기 위해 생가를 복원할 계획이라고 18일 밝혔다. 시는 나혜석이 태어난 지금의 팔달구 신풍동 47 일대를 대상으로 생가터를 찾기 위해 탐문을 벌이고 있으며, 국가기록원에 1911년 당시의 지적도 공개를 요청했다. 또 나혜석 부친 나기정의 호적 변동사항과 토지이동내력 등을 파악하고 나혜석의 후손과도 접촉해 구체적인 생가위치와 규모 등을 파악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시는 조사결과를 토대로 생가 위치가 확인되면 토지를 매입하고 나혜석 후손, 기념사업회, 미술가협회 등을 중심으로 협의체를 구성해 생가복원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앞서 시는 오는 2013년까지 모두 45억원을 들여 540㎡ 규모의 생가와 기념관을 건립하기로 하고 올해 토지매입비 7억6천500만원을 확보했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수원시가 나혜석의 생가를 복원하려는지, 쉽게 수긍이 가지를 않는다. 더욱이 생가터에 대한 정확한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한데다 설령 생가를 복원한다 해도 이를 고증할 만한 자료나 사진도 변변치 않은 상황에서 정체불명의 집을 지어놓고 뭘 어쩌겠다는 것인지, 도대체 모를 일이다. 나혜석의 생가가 신풍동이라고는 하나 한 때 화성시 봉담읍이라는 설이 제기된 적이 있을 만큼 기록이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생가를 복원한다는 것은 억지 설정일 뿐,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현재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에는 나혜석을 기념하는 ‘나혜석 거리’가 조성돼 있다. 이 또한 나혜석이 수원사람이라 해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 설치해 어색하기만 한데 그나마 경기도 문화의 전당 인근에 위치한 탓에 간신히 명분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나혜석이 우리나라 화단(畵壇)에서 차지하는 위치로나 비중으로 볼 때 그를 기념하는 사업을 한다는 것은 환영할만하다. 그렇다고 실체도 없고 고증도 막연한 생가복원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날림’일 수 밖에 없다. 생가의 원형도 모르는데 무슨 수로 복원을 한다는 것인지, 또 설령 자료가 있다 해도 복원할만한 가치가있는 것인지,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만약에 생가터를 찾아냈다면 이를 기념하는 표지석 하나면 충분하다. ‘화성(華城)’이라는 세계문화유산을 갖고 있는 수원시가 그 중심인 행궁(行宮)이 있는 신풍동 언저리에 정체불명의 나혜석 생가를 짓는다면 이건 복원이 아니라 생가신축이라는 볼썽사나운 넌센스일 뿐이다. 그만한 돈을 쓸 여유가 있다면 차라리 미술관을 짓는다든지, 아니면 미술영재를 위한 장학사업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도 실속 있게 나혜석을 기리는 일이다. 수원시의 심사숙고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