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워낭소리’는 2009년 1월에 개봉돼 다큐멘터리 독립영화로는 드물게 관객 200만 명을 돌파하는 놀라운 흥행성적을 냈다. 경북 봉화 산골에 사는 노인 부부와 늙은 소의 ‘우정’을 그린 영화는 수명을 다한 소의 장례식을 치러주는 것으로 대미(大尾)를 장식하는데, ‘워낭소리’가 인기를 끌자 봉화군은 이를 관광상품화 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영화에서 죽은 소를 대신해 새 식구가 됐던 ‘이어’는 지난해 말 안동 구제역으로 살처분됐다.
가장 혹독하게 구제역 파동을 겪은 나라로 영국을 꼽을 수 있다. 1967년 10월 영국 중서부의 슈롭셔에서 한 농부가 다리를 절룩이는 돼지를 당국에 신고했다. 이 돼지는 구제역 확진판정을 받았고, 그 후 구제역 바이러스는 인근지역에 삽시간에 퍼져 총44만2천 마리의 가축이 도살됐다. 영국에서 한동안 잠잠했던 구제역이 다시 창궐한 것은 2001년 2월이다. 한 달간 총선이 연기됐을 정도로 심각했던 당시 구제역 사태로 700여만 마리의 소와 돼지, 양들이 도살됐다. 10월이 돼서야 가까스로 종결됐지만 80억 파운드(약 14조 원)의 경제손실을 가져왔을 정도로 대참사였다.
1929년을 마지막으로 70년 가까이 잠잠했다가 1997년 한 번에 무너진 대만은 돼지 한 마리의 감염으로 시작됐다. 결국 385만 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한 뒤에야 가까스로 종결됐지만 경제적 손실은 무려 69억 달러(약 7조7천억 원)에 달했다. 일본 역시 지난 해 발생한 구제역으로 혼쭐이 났다. 미야자키(宮崎) 현에서 10년 만에 구제역이 발생하자 일본 전역에서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2000년에 발생했던 구제역은 석 달만에 종결됐으며 소 700마리가 도살되는 것으로 그쳤다. 하지만 지난해 3월 발생한 구제역은 농가 1천여 곳에서 33만 마리가 넘는 소와 돼지들이 살처분됐으며 이는 전체 소와 돼지의 20%에 해당하는 것으로 일본 최고급 ‘와규(和牛)’ 가운데 하나인 미야자키 소가 구제역으로 위협을 받기도 했다.
구제역 사태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20일 현재 구제역은 7개 시.도, 55개 시.군, 131곳으로 늘었다. 살처분.매몰 규모도 4천312농가, 216만4천920마리로 집계됐다. 더 이상 피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