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유배 길에 추사(秋史)는 해남 대흥사에 들러 초의(草衣)를 만났다. 귀양살이 가는 처지임에도 추사는 그 기개는 살아 있어 대흥사의 현판글씨들을 비판하며 초의에게 하는 말이 “조선의 글씨를 다 망쳐놓은 것이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인데, 어떻게 안다는 사람이 그가 쓴 대웅보전 현판을 버젓이 걸어놓을 수 있는가”라며 짜증을 냈다.
초의는 그 극성에 못 이겨 원교의 현판을 떼어 내고 추사의 글씨를 걸었다. 햇수로 9년 만에 유배가 풀린 추사는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다시 대흥사에 들렀다.
초의를 만나 회포를 풀던 자리에서 추사는 말했다. “옛날 내가 귀양길에 떼어내라고 했던 원교의 대웅보전 현판이 지금 어디 있나? 있거든 내 글씨를 떼고 그것을 다시 달아주게. 그때는 내가 잘못 보았어.”
수도 서울의 심장부에 서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 광화문이다. 따라서 광화문의 현판을 가리켜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명함’이라고 부른다.
이 광화문의 현판글씨가 한글로 돼있었다. 1968년 광화문을 복원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다. 그리고 이 글씨는 어느덧 40여 년의 세월속에 사람들에게 익숙해졌다.
그런데 지난 해 광복절에 새롭게 복원한 광화문 현판은 다시 한자로 돌려졌다. 그것도 디지털로 복원된 글씨로 말이다.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서울의 한복판에서 벌어졌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하기만 하다. 그래서였을까. 이 현판은 얼마 못가서 균열이 생겨 논란 끝에 다시 제작키로 했다. 그러나 문제는 현판 글씨를 어떻게 하느냐다.
문화재청은 다시 제작하는 광화문 현판 글씨는 문화예술계 원로, 전ㆍ현직 문화재위원, 언론사 및 관련단체 등 전문가 의견 수렴과 공청회 등을 통한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쳐 문화재위원회 심의 후 최종 결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문화재청의 처사를 볼 때 이 일은 답답하기 짝이 없다.
‘광화문’이라는 버젓한 한글 현판을 두고 모조품을 내다 건 것 만 해도 영 못마땅한데 이제 와서 전문가니, 공청회니 운운하며 요란을 떠는 모습은 영 미덥지가 않다.
혹시라도 알량한 자들이 ‘박정희 흔적지우기’로 한글현판을 내렸다면, 다시 그 현판을 다는 것이 역사의 순리다. 내 나라 내 글자로 명함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떳떳한 일인가.
/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