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 설은 영 심심하고 뭔가 빠진 듯 하고, 아직 새해로 접어든 것이 익숙하지 않아 적응하려 애쓰다 보면 곧 설날이 된다.
이번 설날은 입춘과 하루 차이를 보이며 본격적인 한해가 시작됐다.
입춘은 음력으로 주로 정월에 들며 보통 양력 2월 4일경에 해당된다. 24절기 가운데 첫 절기로, 이날부터 새해의 봄이 시작된다. 따라서 이날을 기리고, 닥쳐오는 일년 동안 대길(大吉)·다경(多慶)하기를 기원하는 갖가지 의례를 베푸는 풍속들이 예전에는 있었으나 현재는 대문에 글씨를 붙이는 정도로 축소됐다.
절기가 만들어진 것은 농경사회의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 사용됐으나 현대에 와서는 그 의미가 퇴색되어 버렸다.
그러나 한해가 시작되는 설과 봄의 시작인 입춘을 통해 이전에 살아 왔던 방식을 생각해 보고 버릴 것은 버리고 새롭게 일신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혹은 도전의 용기를 낼 수 있는 마음을 갖어 보기도 하고, 새로운 꿈도 꿀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설명절과 입춘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화두를 던져준다.
봄은 시작과 풍요, 부활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계절의 시작이며, 한해의 시작이고, 또한 모든 만물(萬物)이 생명의 근원을 다시 얻어 소생(蘇生)하는 계절이다. 생명의 근원을 얻어 소생하려 한다면 자신을 키우고, 죽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는 여름을 통해 성장하고 키우는 시기와, 가을의 결실을 맺는 과정, 이를 갖고 머무르는 겨울을 통과해 봄에 이르러서야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때에 이른다.
시작과 끝이 둘이 아니고 하나이듯이, 순환의 과정은 어느것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 존재하기 위해 무수히 많은 인연들을 끌어들이며, 인연들과 함께 한다. 봄이 존재하기 위해 겨울이 있고 여름과 가을이 있듯이 말이다.
그래서 대문에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을 써 붙이고 입춘례 치르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보기로 했다. 집의 대문이 아니라 내 마음의 대문에 기원해야 겠다.
지난해 법원에서 소송이혼중인 부부를 상담조정해 재결합하기로 하고 후속 상담을 진행했던 커플이 있었는데 몇달전 남편이 여전히 예전의 모습을 갖고 있어 힘들다는 메시지가 왔었다.
힘들지만 어렵게 결정한 것이니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해 보아야 하지 않느냐는 답신의 내용으로 잘살기를 기원하며 메시지를 보냈다. 이번 설에 메시지가 들어 왔다.
아마 노력을 많이 하고 애쓰고 있는 듯 했다. 그래도 하나 뿐인 5살 아들이 엄마와 아빠를 부르며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면, 헤어지기 보다 함께 살기를 선택한 것이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한다고 하였다.
이혼소송을 합의조정으로 잘 마무리하고 재결합을 한 성공적인 사례였는데, 사례로서는 성공을 했으나 실제 살아가는 부부들의 일상에서는 얼마나 많은 힘겨움이 있었을까 마음이 찡하다.
최근 도입된 제도의 혜택을 잘 받았다고 고마워 했지만 결국 끝까지 남아 자신을 챙기고 가정을 꾸리기 위해 서로가 가졌던 오해와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려 놓아야 한다고 했었는데, 힘겹지만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는 듯 했다.
아이에게 성실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부부가 다투는 모습이 아니라 서로 아끼고 지지해주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고 했다. 아마도 아이를 위해 자신의 인내를 키우고 있는 듯 했다.
30대의 내 모습이었다면 내담자와 같은 인내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쉰 살의 눈으로 보는 내담자의 모습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어쩌면 극단적인 결정을 너무 빨리해서 혹시나 미처 노력해보지 못한고 정리한 커플에 비하면 후회 없는 노력을 해보고 있으니 이후에 어떤 모습이더라도 박수를 칠 것이다.
세 식구 모두에게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을 마음으로 보내준다. 가족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시작과 풍요, 부활, 생명 근원의 힘을 복원할 수 있는 기운을 갖게 해달라고 기원해 본다. /김미경 갈등관리조정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