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07 (화)

  • 맑음동두천 25.8℃
  • 구름조금강릉 27.3℃
  • 맑음서울 26.6℃
  • 구름많음대전 25.0℃
  • 흐림대구 22.6℃
  • 흐림울산 23.8℃
  • 구름많음광주 24.8℃
  • 흐림부산 27.2℃
  • 구름조금고창 25.2℃
  • 제주 24.5℃
  • 맑음강화 25.7℃
  • 구름많음보은 24.4℃
  • 구름많음금산 25.9℃
  • 구름많음강진군 26.3℃
  • 흐림경주시 22.1℃
  • 구름많음거제 25.3℃
기상청 제공

[좌충우돌] 천하에 남이란 없다

 

설이 지나고, 입춘이 지났어도 여전히 불안하기만 요즘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민심이 ‘민란(民亂)’ 수준에 와있다고 제법 그럴듯한 시나리오로 포장해 이야기를 한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구제역에 대한 불편한 의혹과 2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전세대란, 이를테면 속수무책인 구제역에 열 받고,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셋값에 절망한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는 얘기다.

맞는 말이다. 방역당국이 고비로 언급했던 설 연휴기간에도 구제역 확산은 멈추지 않았다. 매몰된 가축수는 316만 마리를 넘어섰고, 이 가운데 돼지는 300만 마리가 넘게 살처분돼 전국에 사육되고 있는 3분의 1 가량이 땅속으로 사라졌다. 이는 과거 4차례 구제역으로 살처분한 가축보다 14배나 많은 수치로 축산농가로서는 대재앙이나 다름없다.

2년 가까이 연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전세가격은 지난 1월, 한 달간 상승폭으로는 2002년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비수기에 오히려 전셋값이 더 오르는 기현상이 계속되면서 이대로라면 올봄에 전세대란이 절정에 이를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도 있다.

전셋값도 문제지만 연일 치솟는 물가도 정부의 친(親)서민 행보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정부가 올해 내세운 경제운용 목표는 ‘5% 성장-3% 물가’였다. 하지만 1월부터 물가상승률이 4%를 뛰어넘고, 이런 기조가 적어도 3월까지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정부의 물가 목표는 사실상 물 건너 간 상태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했다. 나라가 뒤숭숭하고 악재가 겹치다 보니 불신만 늘어난다. 정부의 얘기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못 믿겠다’는 민심의 이반(離反)이 그것이다. 최근 조사에서 최고의 가훈(家訓)으로 꼽힐 만큼 아직도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로 유효한 ‘소통(疏通)’이지만 정치권으로 오면 갑자기 어색해진다.

답답해진 이명박 정부가 집권 후반기 국정 목표로 내건 ‘공정한 사회’도 상처투성이의 ‘정치적 수사(修辭)’로 전락했다. 청와대가 고심 끝에 내놓은 감사원장 후보자가 청문회 과정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의 공개적인 반대 당론으로 낙마한 일은 당-청간에 소통의 부재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또한 한 달이 다돼가도록 후보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청와대 입맛에 맞는 인사들 가운데 청문회를 무난하게 통과할 인사가 없다는 것과도 같다. 뿐만 아니다.

청와대라는 ‘그들만의 리그’에 안주해온 상당수의 비서관이나 행정관들의 마음이 벌써 콩밭(지역구)에 가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내년 총선을 위해서다. 감히 누가 누구를 청문하겠느냐고, 총선 출마를 적극 원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세상의 일이 생각만큼 어디 그리 호락호락하겠는가. 그러니 국가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공자와 더불어 ‘공묵(孔墨)’이라 불리던 묵자는 ‘천하무인(天下無人)’, 즉 ‘천하에 남이란 없다’고 했다. 얼마나 호탕한 경계인가. 조선의 정여립(鄭汝立,1546~1589)은 ‘천하공물설(天下公物說)’이란 공화주의(共和主義)적인 사상을 내세웠다. 비록 묵자와는 2천 년이라는 시차를 두고는 있지만 이들이 꿈꿨던 세상은 ‘서로가 더불어 사는’ 명실상부한 ‘대동(大同)’사회였다.

말하자면 지금처럼 진보와 보수, 여야도 모자라 ‘친이(親李)’니, 친박‘(親朴)’이니, 주류니, 비주류니 하면서 갈등을 조장하는 세상은 적어도 아니었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살면서 명말청초(明末淸初)의 사상가 탁오(卓吾) 이지(李贄,1527~1602)의 직정적인 고백이 가슴에 와 닿는다. 탁오는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앞에 있는 개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같이 따라 짖었던 것이다”는 말로 공맹(孔孟)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을 비판했다.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유교에 의해 매몰된 묵자의 사상은 아직 잠에서 깨어나기 전이었다. 그럼에도 탁오의 거침없는 비판은 사상의 진보에서 묵자와 일맥상통한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이들은 급진 좌파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다.

이처럼 어느 시대에도 진보와 보수는 공존한다. 문제는 좌우의 균형적인 시각도 없는 진정한 진보나 좌파도 못 되는 소인배들이 이중적인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려드는 데 있다.

천하에 남이란 없다. 영문도 모르고 짖는 개처럼 소신도 없이 이분법적인 잣대에 휘둘리지 말고, 다시 소통하는 지혜로, 별거 아니지만 결코 녹록치 않은, 이 세상을 견디며 살아볼 일이다. /이해덕 논설위원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