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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천상병 시인의 산문집 가운데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오래된 기억이지만 가끔 마음이 크게 흔들릴 때마다 마치 주문(呪文)처럼 이 제목을 떠올리며 스스로 위안을 삼곤 한다. 이 얼마나 따뜻한 가슴인가. 도대체 가식과 위선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정제된, 언어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신앙과도 같은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경지다. 익히 알려진 대로 시인은 기행(奇行)으로 굴곡진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이다. ‘동백림(東柏林) 사건’에 연루돼 고문의 후유증으로 몸과 마음이 망가져 비록 기행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았지만 시인을 지탱케 해준 힘은 바로 이러한 꾸밈없는 천연의 순수였다. 특유의 어눌한 반복적인 어투로 세상과의 소통을 꿈꿨던 시인이 습관처럼 즐겨 쓰던 말이 또 있다.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세상 모든 것이 예뻐 죽겠다는 듯 즐겨 썼던 이 말은 그대로 시집의 제목이 됐다.

자신을 몰라본다는 이유로 주민센터를 찾아가 공공근로직원에게 폭언과 함께 모욕을 준 성남시의회 이숙정 의원이 결국 시의회 윤리특별위원회에 회부됐다. 지방자치법에 의하면 의원 징계 절차는 공개회의에서의 경고, 사과, 30일 이내의 출석정지, 제명 등으로 구분돼 있으며 제명을 하려면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성남시의회 의석수를 보면 한나라당 18, 민주당 15, 민노당(이숙정 의원 탈당으로 무소속) 1명으로, 시장이 민주당인데 반해 간신히 ’여대야소‘ 판세를 유지하고 있다.

본인에게는 뼈아픈 후회로 남는 일이겠으나 여하튼 폐쇄회로 화면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물적 증거가 있어 ’행패‘니, ’난동‘이니, 하는 말을 들어도 변명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그런 상식 밖의 행동을 했다는 것은 그녀의 이성을 순간적으로 마비시킨 그 무엇이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가능하다. 처음 이 사건을 접했을 때만 해도 솔직히 황당했었다. ‘정신병자가 아니고서야’ 공공장소에서 어찌 그런 추태를 벌일 수 있단 말인가. 여론의 뭇매도 뭇매지만, 당장 의원직을 사퇴해야 마땅하다는데 동의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가정(假定)을 해보았다. 뒤꼍에서 남 몰래 며느리에게 뺨맞은 시어머니의 심정 같은 거 말이다. 자신의 지역구 주민센터에 본인 주장대로라면 항의를 하기위해 전화를 걸었는데 받은 쪽에서 무심코 귀에 거슬리는 뉘앙스를 줬는지도 모를 일이다.

‘남자는 가르치지 않으면 내 집을 망치고, 여자는 가르치지 않으면 남의 집을 망친다. 그러므로 미리 가르치지 않는 것은 부모의 죄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李德懋,1741~1793) 선생이 한 말이다. 자식을 두고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내다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상대방을 찾아가 눈물로 사죄를 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맥락이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자식 잘못 가르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자식 키우는 부모의 심정이야 이처럼 매한가지다. 문제는 성남시의회가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 인데 징계수위를 두고 벌써부터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당리당략적인 계산마저 거론된다. 하여간 못된 것은 여의도를 뺨치고도 남을 정도가 됐다. 이 성남시의회가 이번 임시회 기간 동안 전국 기초의회 가운데 처음으로 산하단체 기관장들에 대해 ‘인사청문회’를 연다고 한다. 또 경기도의회는 ‘도의회 답게’ 도의원들이 보좌관을 두고, 도의회의장이 의회사무처 직원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통 큰’ 조례 제정을 추진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도의회는 보좌관제 도입이 실정법 위반이라는 행정안전부의 지적에 따라 보좌관 대신 일단 ‘정책연구원’이라는 용어를 쓰기로 했다는데, 말 타면 견마(牽馬) 잡히고 싶은 심정, 누가 모를까. 청문회나 인사권 요구나. 보좌관이나 따지고 보면 집행부를 향해 폼 한 번 잡아보겠다는 거 아니겠는가.

인간이 인간을 심판한다는 것은 여간 무모한 일이 아니다. 속으로 간음(姦淫) 안 해본 사람 없듯 순전히 양심적인 문제이겠으나, 유교에서는 ‘신독(愼獨)’을, 불가에서는 ‘경계(鏡戒)에 걸리지 말라’고 했다. 우쭐한 이 순간이 영원할 것 같아도 순식간이다. 남은 기간 동안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겠다면, 그래 좋다. 잘 해봐라. 괜찮으니까. 하지만 끈 떨어지고 난 뒷감당은 각자 알아서 할 수밖에. 분명한 건 괜찮다고 모두가 다 ‘요 이쁜 놈’ 소리를 들으란 법은 없다는 사실이다. /이해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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