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 프랑스 파리에 연상의 여인에게만 사랑을 고백하고 다니는 청년이 있었다. 어느 날 이 청년은 쇼팽의 연인이자 소설가인 조르주 상드를 찾아가 물었다.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청년의 말에 그녀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글쎄요. 샘 속에나 있을까…” 하지만 청년은 그녀의 말을 곧이듣고 샘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런 일화가 사람들 사이에 퍼지면서 청년의 이름을 따 ‘드메 신드롬’으로, ‘연상녀 연하남 커플’을 ‘드메 커플’이라고 부른다. 쇼팽과 조르주 상드도 여섯 살 차이가 나는 ‘드메 커플’이었다.
1897년 체코 프라하에서 독일 뮌헨으로 온 22세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는 14세 연상의 루 살로메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니체의 연인으로 그의 청혼을 거절하고 떠난 살로메였다. 그로 인해 니체는 아편에 취해 괴로워했고, 이별의 고통 속에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대작을 완성한다. 유년기 부모의 이혼으로 결핍의 시간을 보낸 릴케는 이런 살로메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다. 그 후 4년 동안 연인으로 지내던 두 사람은 자신을 지나치게 우상화하는 릴케에게 염증을 느낀 살로메가 이별을 선언하며 파국을 맞지만 릴케는 포기하지 않았다. 화가인 클라라와 결혼하며 잠시 안정을 찾는가 했지만 결국 이혼한 것도 살로메 때문이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그녀를 한결같이 사랑했다.
미국의 유명한 추리소설가인 레이먼드 챈들러(1888~1959)가 사후 52년 만에 아내 시시와 합장된 가슴뭉클한 사연이 화제다. 범죄 현장을 냉혹하고 비정하게 묘사한 ‘하드보일드 느와르’의 대가로 인기를 끈 챈들러는 35세이던 1924년 시시와 결혼했다. 당시 53세 이혼녀였던 시시는 챈들러와 결혼하려고 나이를 43세라고 속였을 만큼 그와의 결혼을 간절히 원했다고 한다. 무려 18세 연상의 시시와 결혼을 하면서 생활에 안정을 찾던 챈들러는 1954년 후기 대표작 ‘기나긴 이별’을 발표하던 무렵 아내가 죽자 “30년간 내 가슴속에서 뛰었던 나의 심장”이라며 슬퍼했다. 지난 14일 밸런타인데이에 거행된 합장식에서 시시의 유골 항아리는 챈들러의 관 위에 심장처럼 올려져 안치됐다고 한다. 같은 ‘드메 커플’이었으면서도 릴케의 경우 ‘두이노의 비가(悲歌)’로 남았지만, 뒤늦게나마 ‘해로동혈(偕老同穴)’한 챈들러다. /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