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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나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

 

인간의 도리를 중시한 경영으로 청나라 조정으로부터 상인으로는 전무후무하게 1품관직을 받아 ‘홍정상인(紅頂商人)’으로 불리는 호설암(胡雪巖, 1823~1885)은 범려, 여불위와 함께 중국 3대 상인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견리사의(見利思義)’, 즉 ‘이익을 보면 먼저 의리를 생각한다’는 유상(儒商)의 전형인 호설암이 일찍이 주목한 것이 다름 아닌, 바로 ‘브랜드’다. 상호(商號)를 정할 때 그가 세운 원칙은 눈에 잘 띄고, 부르기가 쉬워야 하며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기만의 특색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상도(商道)에서 명성을 떨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름이 없으면 고객을 모을 수 없고, 고객이 없으면 장사가 잘 될 리 없다는 것으로 이는 ‘브랜드 가치’가 상품의 가치보다 더 큰 중요성을 갖는 현대의 관점에서 단순하지만 대단히 앞선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모든 것이 브랜드의 가치로 평가받는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이 국가든 도시든 기업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확고한 브랜드를 갖춘 국가와 도시는 그렇지 못한 곳에 비해 훨씬 큰 경쟁력을 갖는다. 브랜드 이미지가 좋은 곳에는 관광객이 몰리고 기업의 투자가 확대된다. 너도나도 브랜드를 개발하고 키우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우리나라 지자체들도 브랜드를 만들고 이를 통해 지역 홍보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에 ‘CI(City Identity)’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지방자치체가 시행되고 난 1990년대 중반으로, 이후 브랜드 슬로건이 등장하고, 도시를 홍보하기 위한 이미지화 작업이 가속화되면서 ‘BI(Brand Identity)’ 개발 열풍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하지만 문제는 짧은 기간임에도 자치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이러한 브랜드 슬로건도 덩달아 운명을 달리한다는 데 있다.

경기도만 보더라도 지난해 6.2 지방 선거로 단체장이 바뀐 21개 지자체가 도시브랜드를 바꿔달았다. 이쯤 되면 ‘전임자의 흔적 지우기’나 다름없다. 대개의 지자체가 내세우고 있는 브랜드 슬로건을 보면 솔직히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지자체의 CEO를 표방하면서 정작 ‘인재 경영’은 외면한 채 문구(文句)에만 매달리는 꼴이다. 지역의 일꾼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이 고작 이 정도라면 나중은 안 봐도 빤한 노릇이다. 임기 내내 ‘흔적 지우기’나 하다가 끝낼 위인들이다. 물론 표심을 자극하기 위해 내건 공약도 ‘빛 좋은 개살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 놓고서 다음 선거 때 지금의 브랜드를 완성한다며 연임(連任)을 호소한다면. 글쎄다. 그대로 전직(前職)이 되는 수밖에.

지난 6일 일본 나고야(名古屋)시에서 지방의회 강제해산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시의회의 강제해산을 선두에서 이끈 사람은 가와무라 시장이다. 그가 나고야 시의회와의 투쟁에 들어간 것은 2009년 4월 시장 당선 당시로 알려진다. 중의원 의원 5선을 거쳐 시장선거에 출마하면서 내세운 공약이 감세(減稅)와 시의원들의 연봉 삭감이었다. 이를 관철하기 위해 자신의 연봉도 800만엔으로 줄였고 4년 후 받을 수 있는 4천여만엔의 퇴직금도 포기했다. 그러면서 시의원들에게도 연봉을 자신과 똑같이 낮출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시의원들은 반발했고, 시민들은 6일 의회해산을 묻는 선거에서 73%의 찬성표를 던져 가와무라 시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가와무라 시장은 일본 정치가 가업(家業)정치, 직업정치로 기득권자들의 집합소가 됐다고 했다. 이를테면 칼을 쥔 자들의 횡포가 갈수록 심하다는 얘기인데 적어도 정치권력에 맛들인 자들의 생리상 맞는 말이다. 이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것으로 교만에 가깝다. 나무가 꽃을 버리고 열매를 맺듯, 나를 버려야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있다. 자신 또한 언젠가는 전직이 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쓸데없는 일에 행정력을 낭비하는 것도 같은 범주(範疇)다. 여론을 귀담아 듣지 않고 자기 입맛에 맞춰 새로운 슬로건으로 포장해 봤자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전직이라고 당신만큼 고심하고 궁리하지 않았겠는가.

의회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의 분별력도 없이 그저 당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나 일삼는 것이 풀뿌리 민주주의는 분명 아니다. 그러라고 의정활동비를 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도 기득권에 안주해 계속해서 오만과 독선을 고집한다면, 언제든지 정신 번쩍 나도록 확실하게 본때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것이 주민소환이든, 강제해산이든 말이다. /이해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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