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삼성경제연구소가 조사한 ‘한국의 사회갈등과 경제적 비용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사회갈등지수가 0.71로 OECD 회원국 중 네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사회갈등 지수가 높은 이유로 “행정권이 헌법기관보다 강하고, 정당체계가 불안정하며, 반대집단에 관한 관용이 미흡한 점”을 들고 있다. 또한 보고서는 “사회갈등은 사회적 합의를 어렵게 하고, 이익 집단 간 지나친 경쟁을 초래해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하고, “사회갈등을 OECD 회원국 평균인 0.44로 낮출 경우 국민 1인당 총생산이 27% 증가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27%라는 수치는 우리나라의 연간 국민 총생산량을 1조 달러 정도로 규정할 때, 결국 매년 300조원대의 사회갈등비용이 발생되고 있음을 뜻하게 된다. 2011년도 우리나라 예산이 309조원대임을 감안하자면 사회갈등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떠안게 되는 부담이 얼마나 가혹한 수준에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과연 언제까지 지속해가야 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갈등이라 하면 양극화갈등, 이념갈등, 노사갈등, 지역갈등, 세대별갈등 등이 낯설지 않다. 하지만 사람 사는 사회에서 어찌 갈등을 몇몇 가지 정도로 나열할 수가 있기나 하겠는가.
이 같은 다양한 갈등을 겪어오면서 우리는 이들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에는 익숙했던 반면 어떻게 하면 갈등을 발전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을까에도 고민을 했던가를 되짚어 보자. 갈등은 노력 여하에 따라 진부화를 막아주고 발전적 변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다분히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점차 더욱 복잡 다양화 돼가는 이해상충의 길목에서 갈등을 원만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안 찾기에 서둘러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싶은 것이다. 가장 먼저 정치권에 주문을 하고자 한다. 정치는 속성상 정파 간에 이해를 달리하는 경우가 적잖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정치의 근원은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데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수의 견해도 충분히 존중되도록 하되 궁극적으로는 민주적 절차에 의해 의사가 결정되게끔 하는 시스템을 조속히 강구하길 바란다.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갈등을 발전적으로 융화시킬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데도 서둘러 주길 기대하고자 한다. 경제계에도 주문을 하고자 한다. 기업은 언제까지나 공존공영의 자세를 견지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당연히 투명한 경영을 발판으로 삼아 상생의 기업문화가 조성될 수 있게끔 애써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결단코 도구가 될 수 없고 오로지 함께 일하는 대상으로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언론을 포함한 언론계에도 자성을 촉구하고자 한다. 보수와 진보를 불문하고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는 보도 태도는 지양해주기 바란다. 진정 무슨 목적으로 누굴 위하자고 사회갈등을 부추기는 행위를 서슴없이 자행한단 말인가. 국민을 가볍게 보는 이 같은 작태는 하루빨리 시정돼야 마땅할 줄로 안다.
시민단체에도 바람을 전하고자 한다. 시민단체란 공동의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 특정목적을 위해 모인 조직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보니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도 제각기 매우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벗어나지 말아야 할 공공의 선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성적 분별에서 벗어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요, 아무리 나의 주장이 우월하다 싶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포용력을 저버리는 일만큼은 없게끔 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민께도 감히 당부 말씀을 전하고자 한다.
냉철한 사고와 뜨거운 가슴을 주문하고자 한다. 그러자면 우선 나의 존재감을 사회의 일원으로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겠다. 나의 몸짓 하나가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엄중한 자각이 필요하다. 또한 ‘함께 나누는 세상 만들기’에도 늘 각별한 마음을 가져주기를 당부하고자 한다. 정치권과 경제계와 언론, 그리고 시민단체와 국민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공동체적 삶’을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면, 진정 오늘에 우리의 갈등은 내일에 희망과 번영으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굳게 믿고 싶다. /이민세 영남이공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