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0여 년간 해결되지 못한 채 남겨져 있는 사할린 한인 동포문제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국회 ‘사할린 포럼’ 소속 11명의 의원들과 함께 25일 일본으로 향한다.(이 글은 필자가 일본으로 출국하기 직전 작성한 것입니다)
이날 오후 일본 중의원 국제회의장에서는 ‘사할린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의원 라운드 테이블’이 열리기 때문이다. 일본 측에서는 ‘사할린 문제 국회의원 협의회’ 소속 일본 중·참의원 50여명의 참석이 예정되어 있다. 사할린 동포의 귀국문제, 배상 및 보상 문제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것은 1차적으로는 일본의 책임 회피적 태도 때문이다. 사할린 한인동포문제는 일본이 1938년 국가 총동원령에 의해 조선인 최대 15만 명을 강제징용 등으로 사할린에 끌고 갔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뒤에도 상당수 한인들이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면서 시작됐다.
종전 직후에는 일본은 자국민의 귀환만 열중했고, 소련은 전후재건에 필요한 노동력 확보 때문에 우리 동포의 귀국에 소극적이었다. 우리는 국내혼란과 6.25 전쟁을 거치면서 이 문제를 풀어나갈 여유가 없었다. 이후 사할린 동포 귀국 문제는 북한의 반발과 이념대립에 따른 소련의 거부 및 법적책임을 불인정하는 일본 때문에 미루어져왔다. 일본은 지금까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을 근거로 귀국은 물론 손해 배상 등 모든 법적책임은 소멸하였다는 주장을 해왔다.
탈냉전과 88올림픽을 계기로 소련의 태도가 완화되고, 일본 내 민간인들과 우리 정부 및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한·일간에 일시 모국방문과 귀국 및 정착비용은 일본이, 귀국 후 생계, 의료비용은 한국정부가 부담하기로 협의가 이루어져서 1997년~2001년, 2007년~2010년까지 2차례에 걸쳐 사할린 동포 3천876명이 영주 귀국했다. 일본은 이 귀국사업 역시 인도적 차원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조사에 따르면 아직 사할린에는 한인 1세대 약 1천500명이 남아있고, 이 가운데 329명이 영주귀국을 희망하고 있다. 이번 라운드 테이블에서 일본 측에 가장 우선 강조할 것은 귀국을 희망하고 있는 동포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비용부담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또 강제로 시행한 우편저금문제는 통장을 갖고 있는 사할린 동포 11명이 소송중이지만, 대부분이 자료가 없기 때문에 배상를 받기가 어려워서 일본정부가 소지하고 있는 자료의 공개를 요구할 생각이다.
그리고 또다시 이산가족이 될 수 없어서 자녀와 함께 남아 있는 사할린 동포 1세대에 대해서도 지원하는 방안도 협의하고, 남사할린 전역에서 삶을 마감한 수만 명의 한인 1세 유골 반환문제도 일본에 러시아와의 3국간 협의를 제안할 생각이다.
다만 일본의원들이 기왕의 입장에서 벗어나 사할린 동포문제 해결을 위해 보다 다양하고 책임 있는 방안을 제시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는 강한 추궁만 하기보다는 설득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일본이 피해자들이 지닌 역사적 기억에 대해 진정으로 책임질 때 일본이 정상국가로 나아갈 수 있으며 동아시아가 미래로 전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 등을 강조할 생각이다.
일본에 대해 강제동원과 전후 방치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국회나 정부도 이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 현재 국회에는 사할린 동포에 대한 실태조사와 2세를 포함한 귀국지원, 잔류한인에 대한 지원 등의 내용이 담긴 4개의 법안이 계류 중이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외교적 마찰 가능성, 1세만으로 이뤄진 기존 영주귀국자와의 형평성, 일본 정부와의 지원 중복 가능성 등 때문에 법제정이 미뤄지고 있다.
강제 동원 된지 70여년, 사할린 동포들은 고향땅도 밟지 못한 채 ‘동토의 땅’에서 굶주려서 죽고, 추워서 얼어 죽고, 고향땅과 부모형제를 그리워하다 죽어갔다. 이제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이 비극의 역사를 겪어온 1세대들이 모두 사라진다. 그들에게 더 늦기 전에 모국의 의무를 다해야한다는 무거운 가슴을 안고 일본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