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 끝자락이 되니 동장군의 기세는 봄볕에 물러가고 응달잔설도 봄기운에 녹고 있다. 유난히 길고 추웠던 겨울이었기에 사람들은 반가운 날씨인사를 주고받으며 활기가 넘친다. 봄의 전령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빛으로 채우는 이 시기에 내겐 또 다른 기쁨이 있어 하루에 몇 번씩 웃고 감회에 젖게 한다. 대학입시철이 지나고 신학기가 오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 재수를 결심한 딸아이를 데리고 학원가를 기웃거렸었다. 처음엔 힘든 그 시간을 어찌 감당할까 반대했지만 중학교 때부터 자기소견이 분명해 예고를 선택하고 성실히 잘 다녀준 딸이기에 믿고 함께한 한 해였다.
종합학원을 며칠 다니다 그만두고 오전엔 독서실이나 도서관으로 가서 공부를 하고 저녁엔 미술학원에서 그림공부를 하다 밤늦게야 집으로 왔다. 친구들은 컴퓨터로 만나고 가끔씩 영화를 다운받아보고 음악 들으며 자신의 시간을 만들었다. 엄마란 그저 도시락 싸주고 기분을 살피는 것, 기도해주는 것 그 이상을 대신할 수 없기에 늘 걱정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인가보다. 날이 화창하면 좋은 그 날씨 때문에, 춥고 흐린 날은 그렇기 때문에 홀로 견딜 시간들이 안쓰러워 짠한 마음으로 현관에서 아이를 보냈다.
수능 당일 떨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교실에 일찍 들어가 있으라는 입시선배 네티즌들의 충고대로 새벽 여섯 시 반에 입실했다. 고3 때 첫 시간 긴장으로 허둥거려 자기실력을 놓친 경험 때문에 무척 긴장하였다. 시험답안은 무서워 맞추지도 못해 동생과 아빠가 대신했다.
수능 다음날부터 두 달 반 동안 실기에 몰두하느라 마지막 힘을 다 쓰는 듯 몸은 자꾸 아프고 야위어갔다.
독서실 짐 정리 하러 간 날이었다. 불을 켜니 한 몸 겨우 들어가 앉을 책상 칸막이엔 힘들 때마다 자기결심과 꿈을 그린 문구로 스스로 단련한 흔적이 있는 탁상달력을 보고 그 무성한 고독의 시공이 느껴져 한없이 눈물이 났다. 세 번의 시험 보는 날은 왜 그리 혹한이던지 물 한 병과 화구박스를 들고 들어간 아이를 네 다섯 시간 기다리던 지루함과 초조함, 출구 앞에서 코트 속에 몸을 웅크리고 무리 지어 아이를 기다리던 동병상련을 지닌 부모님들 모습은 마치 남극 펭귄들이 모진 겨울 한파를 지내는 장면과도 흡사했다.
그 모든 시간이 지나갔다. 합격발표를 본 그 순간의 기쁨과 감격은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오늘 아이는 신입오리엔테이션을 떠났다. 내 허리를 감으며 “엄마 사랑해! 난 내가 좋아서 선택한 거였지만 엄만 원한 것도 아닌데 생각해보니 나보다 더 힘들었을 것 같아. 고마워.” 한다.
언젠가 본 릴케의 산문에서 ‘사랑은 우선 홀로 성숙해지고 나서 자기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라는 말아 떠오른다. 이십 년 동안 받은 사랑과 홀로 견딘 고독의 순간이 찬란히 빛나 자기 자신의 사랑을 완성하고 또 다른 사랑의 세계로 높이 비상하기를, 또 나에게도 다가오는 새봄이 아름다운 중년으로 가는 감사의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오는 봄 삼월을 맞이 하고 있다. /손유미 수필가· 시인
▲ 1965년 인천 출생 ▲ 인하대 국문학과 ▲ 문학세계 시 부문 등단 ▲ 경기한국수필가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