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쇼크’라는 말이 있다.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고령화 사회에서의 ‘장수(長壽)’는 축복이라기보다는 두려움과 공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말하자면 ‘장수사회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오래 사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가 우선이다. ‘삶의 질’의 문제이기도 한데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50청년, 70중년’이라는 말까지 생겨나게 됐다.
예전이나 요즘이나 결혼해서 60년을 같이 살아야 열 수 있는 ‘회혼례(回婚禮)’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녀가 없거나, 죽거나, 이혼해서도 안 된다. 범법행위가 있어서도 안 된다. 오복을 두루 갖춘 결혼 60주년이 되어야만 회혼례를 치를 수 있었다. 말이 좋아 60년이지, 생판 남이 만나 환갑의 나이를 산다는 것은 조혼(早婚)의 풍습이 있던 과거에도 그야말로 하늘의 축복이 없이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부인 손명순 여사가 결혼 60주년을 맞아 4일 회혼식(回婚式)을 갖는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국회부의장 비서로 있던 1951년 3월 6일 당시 이화여대에 재학 중인 손 여사와 결혼했다. 앞서 지난달 15일엔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 박영옥 여사가 회혼을 맞았다. 알려진 대로 김 전 총리의 결혼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의 조카딸인 박 여사를 소개한 것이 인연이 됐다. 6.25 전쟁의 와중에서 만난 두 사람은 1·4 후퇴 직후 대구에 있어야 할 박 여사가 “연락이 끊겨 죽은 줄 알았다. 확인하려고 왔다”며 서울 육군본부로 김 전 총리를 찾아오면서 인연임을 확신했고, 다음 달 대구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김 전 총리는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부침이 심했던 내 인생 아닌가. 매일 소식을 줄 수 없으니 매일 내 연락만 기다리며 좌불안석하느라 허송세월한 여인이다. 참 고마운 여인”이라며 결혼생활의 공을 아내에게 돌렸다. 이어 김 전 총리는 “결혼은 고생길을 택하는 것”이라며 “다른 건 몰라도 60년을 한 여인과 살아온 그 마음은 젊은이들이 따라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에 회혼을 맞은 두 정치 9단을 보면서 한편으로 인생의 무상함이 생각난다. 정치판에서 때론 적과 동지로 만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두 사람이지만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있겠는가. 정치를 ‘허업(虛業)’으로 본 김 전총리다. 두 사람 모두 이젠 ‘허업’은 잊고, 원로로서 복된 여생을 누렸으면 한다. /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