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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화남 고재형

1906년 어느 봄날, 선비 한 사람이 나귀를 타고 강화도 순례길에 올랐다. 선비는 섬을 둘러보다가 풍광이 좋은 곳이나 지인의 집에 이르면 발길을 멈추고 시를 지었고, 그 256수의 시를 모아 ‘심도기행(沁都紀行)’이라는 문집으로 남겼다. 그 선비가 불은면 두운리 두두미 마을에서 태어난 화남(華南) 고재형(高在亨, 1846~1916)이다. ‘동풍이 일어나서 상방촌에 불어오니/이 씨와 유 씨가 문을 열고 봄빛을 맞네/밭 갈고 책 읽고 고기잡고 나무하며 부지런히 일하니/욕심없이 한가하게 전원에서 살고 있네’

이렇듯 화남은 강화의 구석구석을 돌며 전통이 급속히 사라져가는 풍속을 개탄하며 마을유래와 풍경, 주민들의 생활상을 소재로 시를 읊었다.

제주에 올레길이 있듯이 강화엔 나들길이 있다. ‘심도’는 강화의 별칭이다. 따라서 강화나들길은 화남의 ‘심도기행’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길이다. 그래서일까. 강화나들길 곳곳에 화남의 시가 새겨진 표지석들이 서있다. 8코스로 된 나들길을 열며 강화군은 ‘도보여권’이라는 것을 발행했다. 코스별로 출발과 도착지에서 스탬프를 받아 전 코스 완주시에 도보여행인증서를 준다고 한다. 걷는 재미에 덤으로 인증서까지 받을 수 있다니, 참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강화사람들은 몰라도 외지인일 경우 화남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1888년(고종 25) 식년시(式年試)에 급제한 화남은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고향의 선비로 살았다. 화남이 강화순례에 나선 1906년은 을사늑약 이듬해로 대한제국의 운명이 저물어가던 암울한 시기였다. 고향에 대한 애정을 갖고 길을 순례했던 화남의 마음은 곧 애국충정의 얼이 깃든 ‘강화의 마음’이나 진배없다. 한 편의 서사시와도 같은 ‘심도기행’은 지리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화남이라는 인물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강화군이 6코스로 ‘화남생가 가는 길’을 만든 것은 그런 면에서 의미있는 일이다. 무명의 선비인 화남을 나들길을 개척한 인물로 비중있게 자리매김시킨 강화군의 기획 또한 돋보인다. 이와 같이 별것도 아닌 것을 별것으로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관광의 동력이요, 경쟁력이다.

이 봄에 화남이 100여년 전에 홀로 걸었던 나들길을 걸으며 강도(江都)가 겪어 온 기나긴 수난의 역사를 돌아보고, 아

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듯 싶다.

/이해덕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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