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게 오던 봄도 경칩이 지나면서 톡톡 봄이 터진다. 잠자던 예술현장도 하나둘 기지개를 편다. 예술은 삶에 물기를 보태준다.
겨우내 구제역 쇼크에 이어 뛰어오른 물가 탓에 너나 할 것 없이 생계가 무겁다. 예술이 가까이 우리들 삶에 다가서야 할 때다.
예술은 인간 정신의 최고의 자양분이기에 그렇다. 예술세계, 그것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인간을 놀라게 하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
공연장마다 객석을 꽉 메우고, 공연이 끝날 적마다 수차례 커튼콜이 이어지고 마침내는 관람자 모두가 기립박수를 보내는 장면은 생각만 해도 마음 설렌다. 전시장은 입구에 작품을 보려는 관람객이 행렬을 이루고, 왁자지껄해도 즐겁다. 헌데 실제는 그렇지 않아 안타깝다.
예술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 예술엔 국경도 없고 사람도 가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예술은 그 중요성만큼 소비되지 않고 있다. 예술을 먹어 주지 않는다.
공연, 전시, 연극, 영화, 책 등 예술상품의 소비를 촉진시켜야 한다. 월 1회 이상 공연장과 전시장을 찾고, 머리맡 책 갖기 운동을 펼쳐가는 예술소비운동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예술인들의 활발한 창작활동을 돕는다.
시민들은 예술문화 체험의 기회를 갖게 된다. 예술의 생산자인 예술가, 생산물인 예술작품도 소비 판매되어야 재생산인 창작이 이루어진다.
예술가는 향수자인 소비자를 위해 양질의 예술품을 생산해야 한다. 예술가는 그 자신의 작품에 종속된다. 작품이 그 작가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바로 ‘나’다. 진정한 예술작품은 신비롭게 태어난다. 장중하면서도 간결한 예술은 소비자에게 최고로 호소력 있는 작품이다.
‘줄리어드’ 나왔다고 다 명연주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규격이 없다. ‘다름’이 있을 뿐이다. 창작의 세계가 학위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예술가의 삶과 정서를 통해 습득되어지고 감득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정체성조차도 정립되지 못한 예술가, 권위주의에 사로 잡혀서 허명에 들떠 있는 예술가는 아닌지 성찰이 요구된다.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을 통해 행복과 자유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공연무대는 자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드러내는 특별한 곳이다.
관객과 심정적으로 교감하고 소통하는 곳이다. 몸의 언어는 말보다 솔직하다. 아무리 외적으로 아름답게 꾸민다하더라도 내면이 아름답지 않으면 진정한 감동을 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무대는 늘 가슴 떨리는 곳이다. 어찌 무대뿐이랴. 전시예술도 마찬가지다. 좋은 작품들은 작가가 그리는 게 아니라 어떤 깊고 오묘한 기운, 감정들이 쉼 없이 작가 자신을 끌고 간다.
예술 공연들이 봇물을 이뤄도 관객이 없으면 다양한 불꽃을 일으킬 수 없다.
그야말로 푸짐한 예술문화 뷔페일지라도 소비자인 관객이 먹어 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완성도 높은 무대예술도 그러하다.
예술은 혼탁한 사회와 경제, 정치 등의 답답한 현실을 초월하여 활기찬 삶을 찾게 만든다. 시민들이 예술소비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예술의 소비는 곧 예술의 생산으로 연결된다. 예술에 대한 관심과 사랑 없이는 훌륭한 예술가와 명작이 탄생할 수 없다. 예술문화도시는 예술가들의 훌륭한 작품이 항시 전시, 공연되고 좋은 작가와 명품예술이 많이 탄생되는 도시다.
예술이 도시 이미지 브랜드를 창출하며 문화콘텐츠가 곧 도시 산업으로 연결되는 시대다. 예술의 소비가 내일을 약속한다. 예술가는 사람들의 가슴에 아름다운 영혼과 충만한 삶, 정신적 풍요로움을 채워주는 작업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