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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칼럼] 우리나라 최초의 여권선언

 

‘3월 8일은 ‘세계여성의 날’이다. 이 날은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노동자들이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인 데서 시작됐다. 당시 미국은 경기침체로 많은 노동자들이 생활고에 허덕였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여성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매우 열악했다. 이듬해인 1909년에는 미국 전역에서 2만여 명의 여성노동자들이 참정권을 요구하고 나섰다.

당시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 나라는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핀란드 등 세 나라에 불과했다.

미국은 1920년, 영국은 1928년에야 비로소 여성에게 완전한 참정권을 인정했다. 이 기간 참정권운동을 하다가 투옥 당하거나 목숨을 잃은 여성들도 적잖았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여성들은 투쟁 없이 참정권을 부여받았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하게 정치에 참여하는 권리에 대한 의식이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일찍이 1898년 9월 1일 서울의 북촌에 사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선언문이 발표됐다. ‘여권통문(女權通文)’이라고 한 이 선언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에 의한 인권선언문, 여성해방론이다. 이 선언문의 내용을 보면 113년이 지난 지금에 읽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권리와 평등, 사회참여의식에 투철하다.

이 선언문은 ‘이천만 동포가 구습(舊習)을 버리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워지고 있는데 어찌 우리 여성들은 귀먹고 눈 어두운 병신처럼 옛 규범만 따르고 있겠는가. 신체에 남녀가 다름이 없는데 어찌하여 여자는 남자가 벌어다주는 것만 먹고 평생을 집안에 머물면서 살 것인가. 여학교를 세워 여자아이들을 교육시켜 남녀가 평등한 사람이 되게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여성도 정치와 사회에 참여할 권리, 직업을 가질 권리, 교육을 받을 권리를 부여하라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사회는 이 선언문에 대해서 놀라움을 나타냈다. 어떤 신문은 이 선언문의 전문을 게재했고, 황현도 그의 문집 <매천야록>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남녀동권을 제창한 일’이라고 썼다. 특히 이 선언문을 발표하며 함께 준비하고 찬동한 여성이 300여명에 이르렀다. 이 중에는 서울의 양반계층 여성들 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층의 여성과 기생들, 지방의 여성들도 참여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 여성들의 권리의식이 폭넓게 성장하기 시작했음이다.

‘여권통문’에서 여성들이 가장 강조한 것은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였다. 서구와 달리 당시 우리나라에는 산업화가 시작되지 않아 여성노동자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고, 참정권 역시 입헌군주제가 갖춰져 있지 않아 시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여성들은 내외법에 의해 평생 집안에서 가사만을 담당하고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인식했다. 이 선언문을 만들고 발표한 여성들은 곧이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단체인 ‘찬양회’를 조직해 여학교 설립을 위한 운동을 벌였다.

‘찬양회’는 여학교 설립에 필요한 회비만 내면 신분이나 직업에 관계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회원이 될 수 있게 했고, 정기적으로 집회를 열어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사회적으로 확산시켰다. 이듬해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들에 의한, 여성을 위한 학교인 ‘순성여학교’가 설립된 촉매제다. 올해 3월 8일에도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해 집회와 기념식을 갖고 거리를 행진하며 여성의 평등한 권리를 외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전국 180여개의 여성·시민사회단체가 기념행사를 갖는다. 서양여성들에 못지않게 일찍이 1898년에 여권을 주창한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의 앞선 권리의식과 사회참여의 의지와 노력을 기리며 새로운 결의를 다지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 /안태윤 道가족여성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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