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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어설픈 여자의 첫 해외나들이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설렘이다. 새로운 것을 만나서 보고 듣고 느낀다는 것도 또 다른 하나의 세계를 갖는 것이다. 마음은 늘 자유를 꿈꾸지만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살림을 하다보면 여행이라는 게 간단치가 않다.

하루만 집을 비워도 엉망인데 며칠 간의 바깥나들이는 많은 것을 요구한다. 곰국은 아니더라도 한두 가지의 찌개는 끓여 놓아야 하고 멸치볶음이며 도라지초무침 등 식구들이 입맛을 잃지 않도록 기본적인 식탁은 준비해 놓고 떠나야 하는 게 주부의 입장이다.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정보를 수집했다. 여행 가서 먹을 음식들을 준비하면서 모두들 여행을 가기도 전에 마음부터 신이나 있었다.

따뜻한 봄날이 오니 새삼 그 날이 그립다. 지금껏 변함없이 인생의 동반자이자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아낙들이 고맙다. 인생도 누구에게나 함께하는 여행길이 아니겠는가.

오래된 얘기다. 2004년에 있었던 일이니….

처음으로 해외 여행길에 올랐다. 일본의 남쪽 지방 ‘가고시마’. 계모임에서 만난 동네아낙 7명이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가고시마 공항에 도착해 먼저 호텔로 향했고 그 곳에 딸려 있는 유명하다는 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겼다. 검은 색깔 모래 속에 파묻혀 찜질도 하는 등 여행의 맛을 한껏 느끼며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가이드가 이제부터 호텔방 배정을 한다고 했다.

우리 팀은 7명이라 두 명씩 방 하나를 주고 한 사람이 남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방을 혼자서 쓰게 되었다. 저녁 식사를 끝낸 후 아낙들은 뒤풀이를 한다며 한 방으로 모여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과 김치, 마른안주와 소주를 펼쳐놓고 파티 아닌 파티를 열었다. 집 밖에서의 해방감에 온갖 수다와 먹을거리로 자정이 넘도록 접시를 깼다. 웃고 떠들던 아낙들은 피곤하다며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고 나는 혼자 남게 됐다.

혼자가 된 나는 느긋하게 샤워 후 차를 마시며 일본드라마도 감상했다. 외국에서의 밤은 그렇게 저물고 어느덧 새벽 2시가 되어 잠을 청해볼까 했는데 바로 그 때 문제는 시작됐다. 도대체 방에 켜있는 불들이 꺼지지 않는 것이다.

스위치를 아무리 찾아도 없고 이것저것 다 만져 봐도 불을 끌 수가 없어 포기하고 그냥 자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도저히 침대 위 머리맡 등불이 신경 쓰여 잠이 오질 않는 것이다.

참지 못한 나는 목욕 타월을 가져와 등불에 덮어 씌웠고 그 위에 배게까지 얹었다. 그나마 불빛을 가릴 수 있어 그럭저럭 눈을 붙이고 잠이 들 수 있었고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그런데 일어나보니 목욕 타월이 불에 타기 일보 직전이었다. 배게도 뜨끈뜨끈. 사태는 심각했다.

아침밥을 먹으며 아낙들에게 이 황당한 사건을 얘기해 주었더니 모두들 배꼽을 잡았다. 그야말로 나 혼자만 불타기 직전의 밤을 보낸 것이다. 알고 보니 키를 꼽았다가 다시 빼야 불을 끌 수 있었다는….

가고시마는 2월이었는데도 따뜻한 봄 날씨 같았고 신궁은 또 어찌나 많은지. 마지막 날 온천은 달빛아래 노천탕에서 선녀가 부럽지 않았다.

그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반찬 걱정을 했고 또 몇 년 뒤에는 몇 번의 해외여행을 다녀왔지만 이젠 호텔방 불도 잘 끈다. /김영희 시인

▲ 1959년 경북 문경 출생 ▲ 한국문학예술 신인상(포스트 모던)으로 시인 등단(1998년) ▲ 한국문인협회 회원 ▲ <그녀가 웃어요!> <스물넷의 가을> <사랑을 입금하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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