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린 봄비에 뜰 안은 봄기운이 가득하다. 겨우내 말랐던 나무 가지가 다시는 살아 날 것 같지 않고 얼어붙은 대지는 마치 소망을 잃어버린 것 같이 보였다.
그러나 새 봄은 잿빛나무 가지마다 싹을 틔우고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에 기지개를 하는 들판을 초록으로 물들이고 있다.
아침부터 집안을 청소하던 아내가 책상 서랍에 수북이 쌓인 영수증을 차곡차곡 정리 하다가 곱게 접은 편지 한통을 발견했다.
지난해 가을 수능 시험을 며칠 앞두고 현정이가 아빠의 생신을 축하한다고 내게 쓴 편지였다. 현정이는 고3 시절 대학 시험 때문에 너무 바쁘고 마음이 조급해 생신날 잘 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면서 좋은 아빠가 항상 곁에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부모님께 걱정만 끼쳐 드렸지만 남은 기간 열심히 공부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해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편지지 끝에 예쁘게 그려 놓은 여러 개의 하트와 현정이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노래하는 모습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편지를 읽으면서 현정이가 그동안 대학 시험 때문에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 아팠다. 성격이 명랑한 현정이는 수능시험을 보던 날도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러나 대학에 원서를 내고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남들처럼 뒷바라지를 잘 해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합격자를 발표할 즈음 현정이가 내게 속마음을 털에 놓았다. 열심히 공부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며 다시 한 번 대학입시에 도전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시간을 갖고 조금 더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 후 현정이의 뜻에 따라 올 한 해 공부를 더해 내년에 대학에 가는 것으로 힘든 결정을 했다. 이제 2011년도 대학입시는 끝이 났다.
사랑하는 딸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우리 사회는 패자보다는 승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대학 입시가 그렇고 각종 고시도 그렇다. 선거와 운동경기도 마찬가지다.
성공한 사람들의 현수막을 거리마다 내걸고 신문과 방송은 이들의 소식을 앞다퉈 전하지만 패자에 대한 말은 별로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 번의 성공과 승리가 평생을 좌우하는 것은 아니며, 대학입시가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한 번의 실패나 실수를 거울삼아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다시 도전한다면 반드시 더 영광스런 승리자가 될 수 있다. 재수는 인생에서 중요하고 뜻 깊은 일이다.
자칫 뒤떨어졌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일 년 동안 내일을 위해 최선을 다해 뜻을 이룬다면 더 보람 있고 값진 일이다. 남들보다 늦게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간 동안 인생을 더 깊이 생각하고 준비해 새 출발을 한다면 더 성숙한 대학 생활을 할 수 있다. 현정이는 아빠에게 세상의 그 어떤 꽃보다도 아름답고 예쁜 딸이자 우리 가정의 기쁨이고 희망이다. 아빠는 네가 밀려오는 새봄처럼 정직하고 부지런해 하루하루 충실하리라 믿는다. 부디 강한 자신감으로 푸른 창공을 향해 힘차게 날개 짓하는 독수리같이 내일의 진정한 승리자가 되기를 빌며 힘찬 박수를 보낸다. /박병두 소설가
▲ 문학시대 동인 ▲ 한국문인협회 회원 ▲ 성남문협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