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14일 오전부터 계획정전을 실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을 잠정 연기했다. 전력부족 소식을 접한 시민들이 앞장서 전기를 아껴 부족분을 메울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날 도쿄역에 있는 다이마루 백화점은 절전을 위해 평소보다 1시간 늦은 오전 11시에 개장해 3시간 앞당긴 오후 6시에 폐장했다. 미처 이 소식을 모르고 오전 10시부터 찾아간 사람들이 1시간여 백화점 앞에서 대기했으나 백화점 측에 항의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또 계획정전으로 운행이 중단된 구간이 생기는 바람에 출근길 혼잡이 예상됐으나 시민들은 질서를 지키면서 역무원의 지시에 따라 탑승했다.
쓰나미로 초토화된 도호쿠(東北) 해안 지역에서도 이런 시민의식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미야기(宮城)현 기센누마(氣仙沼)시의 대피소에선 아직도 식품 공급이 원활치 않아 충분한 식사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재해본부 측에서 지급하는 식료품을 타려고 장시간 길게 줄을 서면서도 불평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식품 부족으로 전체 인원의 3분의 1밖에 먹을거리를 지급받지 못했지만 서로 나눠 먹으며 배고픔을 견뎌냈다. 센다이(仙臺)시의 한 쇼핑센터 앞에는 수백 명이 생필품을 사기 위해 줄을 서 있었지만 새치기를 하거나 밀치는 이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수도가 끊긴 지역에서는 주민들이 차분하게 줄을 서서 급수차에서 물을 배급받았다. 지난 1985년 일본 군마(群馬)현 오스다카(御巢鷹)산에 JAL기가 추락해 승객 520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이 사건은 세계 민간항공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됐다. 그러나 당시 세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사고 그 자체보다 몇 명의 승객들이 남긴 유서(遺書)였다.
비행기가 추락하는 짧은 시간에 그들은 가족들을 위한 유언을 메모로 남기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침착함을 보여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최악의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原電)공포 등 대재앙을 만난 일본인들이 놀라운 시민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냉정하리만치 침착한 일본에 세계인들은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는‘국화(菊花)와 칼’에서 일본인들이 갖는 특성 가운데 하나로 ‘자기 수양에 의한 극기(克己)’를 들었다. 때문에 어떤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일본인들은 잘 참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민의식이 있는 한 일본은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꽃피워낼 수 있는 민족이다. 이것이 진정한 선진국민의 힘이다./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