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참 아름다운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 있다. 저절로 미소짓게 만드는 아름다운 사람, 최근 그런 분을 만났다.
화성시 장안면 장안리 ‘성신 양로원’ 시설장 김근묵(61) 씨는 남에게 드러낼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하다 수차례의 요청 끝에 16일 마침내 방문을 허용했다.
현관문을 열며 함박웃음과 함께 기자를 맞이한 그는 80대와 90대 할머니와 할아버지 25명이 생활하고 있다는 말을 던지고는 조용하고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거실을 걸어들어갔다. 그리고는 거실 한쪽에 5~6명의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나물을 다듬는 곳으로 다가가 나물을 다듬으며 곰살맞게 할머니들의 안색을 일일이 살피며 안부를 물었다.
김 씨가 부인 이경희(63) 씨와 함께 ‘모셔온’ 어르신들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온 게 벌써 11년째다.
하얀 벽돌로 지어진 단아한 건물의 양로원은 입구 옆으로 수풀과 나무을 세우고 텃밭 옆에는 장독대 등을 세워놓아 마치 경치 좋은 카페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건물은 2000년 7월 김 씨가 도교육청 산하 경기도교육정보연구원을 그만두면서 받은 퇴직금과 봉담의 조그만 집 하나를 팔아 마련한 2억여원으로 지은 것이다.
김 씨의 ‘나눔생활’은 지난 1971년부터 시작됐다. 화성의 한 시골에서 태어나 말썽꾸러기로 자란 김 씨는 1971년 군에 자원입대, 월남으로 향했고 훈련 도중 가슴을 다쳐 의무대로 후송된 뒤 전쟁으로 부상당한 동료들을 보면서 생명이 다할 때까지 남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
이때부터 김 씨가 한 일은 헌혈이었다. 보름이 멀다 하고 헌혈을 했고 지금까지 모두 167차례나 헌혈을 했다.
김 씨는 1979년 부인 이 씨를 만나면서 나눔생활의 범위를 더욱 넓혀 봉사활동을 펼쳤다.
1982년 도교육연구원 9급 기능직으로 들어가 매달 헌혈을 하고 헌옷가지를 불우이웃에 전달했다. 월급을 쪼개 양로원 보내기도 꾸준히 전개했다. 이런 공로가 알려지면서 김 씨는 1991년 대한적십자사로부터 헌혈 유공장 ‘금장’까지 받았다.
김 씨는 “계속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세월이 이렇게 되었네”라고 담담하게 이야기 하지만 늘 한결같이 맞이해주는 어르신들이 오히려 더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면 진정으로 봉사를 실천하는 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김 씨는 “함께할 이웃이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아닌 우리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데 작으나마 보탬이 되려 이 일을 할 뿐”이라며 너털웃음을 보였다.
김씨의 봉사활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지난 1995년 한 만성신부전증 환자에게 자신의 신장을 떼어 새 삶을 찾게 한 데 이어 2002년 2월에는 자신의 간 일부를 아무 조건없이 남에게 주었다.
간 이식수술 직후 김 씨는 “간은 이식한 뒤에도 다시 자란다는데 또 이식해도 되느냐”고 물어 담당의사를 놀라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남편의 이같은 생활에 감복한 부인 이 씨도 1997년 2월 신장기능 마비로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투병하던 한 고교생(당시)에게 신장을 기증, 부부장기기증자 국내 1호가 됐다.
하지만 요즘 남편의 자기 희생적 삶을 묵묵히 뒷바라지해 온 부인 이 씨의 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 김 씨의 건강이 부쩍 나빠졌기 때문이다.
김 씨가 기자와 인터뷰 내내 연신 다리를 주무르는 모습에서도 김 씨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부인 이 씨는 김 씨의 이같은 증세에 대해 “고엽제 후유증때문”이라면서 “2000년부터 하반신 통증과 마비증세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남편이 이제는 자신의 건강도 돌봤으면 좋겠다”고 작은 소망을 피력했다.
가끔 우리 주위에는 봉사활동을 순수한 마음에서 하기보다는 자신의 영리를 위해 또는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러한 봉사활동은 지속하기 어렵고 활동도 점차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이들 부부처럼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는 것은 물론 퇴직 후에도 무료양로 시설인 ‘성신양로원’을 운영하면서까지 아름다운 봉사활동을 펼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김 씨는 “세상은 나날이 변화하고 바뀌지만, 사람은 함께할수록 더 구수하고 정이 깊어가는 것 같다”며 “사실 봉사를 하면서 나보다 약하고 힘든 상황인 사람을 도운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받는 것은 너무나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순수한 사랑과 감사함, 그리고 나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것이다. 앞으로도 맨 처음 가져던 초심을 잃지 않고 이곳 어르신들과 함께하고 싶다”며 “내가 가진 작은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할 수 있어 오히려 그게 더 큰 기쁨”이라고 덧붙였다.
세상이 각박하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주변에는 김 씨 부부처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묵묵히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어 세상은 참 살맛나지 않은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진=이준성기자 oldpic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