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다르다(different)’는 말과 ‘틀렸다(wrong)’이라는 말을 혼동해 쓸 때가 있다. ‘맞다, 틀리다’는 옳고 그름을 말할 때 쓰고, ‘같다, 다르다’는 둘 이상의 것들을 비교해 그 차이를 인식할 때 쓰는 말이다. 한의학과 서양의학(흔히 말하는 현대의학)은 하나는 옳고, 다른 하나는 틀린 것일까, 아니면 둘은 다른 것일까? 하나가 옳고 하나가 틀렸다면 질병에 대해 하나는 100%, 하나는 0%의 치료율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둘을 이야기 할 때 ‘맞다, 틀렸다’가 아니라 ‘다르다’로 말해야 되지 않을까?
한의학을 공부하면서 몇 가지 서양의학과 다른 점을 느꼈는데, 그 중 하나가 인체를 다루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보자. 한의학에서는 어떤 질병이든지 일단 몸 전체를 놓고 본다. ‘눈이 아프다, 충혈이 된다’면 간에 이상이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간에 이러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장부는 무엇일까 생각하고, 간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는 피(血)의 문제, 또는 기울(氣鬱)을 생각한다. 반면 서양의학에서는 눈에 바이러스나 세균이 침입해서 염증이 생겼는지, 또는 안압의 문제가 있는지를 생각할 것이다.
‘기울(氣鬱)은 뭘까?’ 기울이란 스트레스다. 1900년대 초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바이러스’, ‘항생제’, ‘스트레스’라는 말을 자세히 설명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사람들의 인식에는 ‘기울’이라는 말은 쉽게 이해되지만 ‘바이러스’, ‘세균’, ‘항생제’는 전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도대체 간과 눈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야? 역시 한의학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미신이야!’ 하지만 한의학에서 말하는 간(肝)과 서양의학에서 말하는 간은 많은 차이가 있다. 서양의학에서 간을 다른 장부와 기관과는 관련이 없는 독립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면, 한의학에서는 다른 장부와 일정한 관계를 갖고 있고, 특히 눈과 관련이 깊은 기관으로 보며 그래서 ‘간계(肝系)’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만일 조선시대에 의학 공부를 한 사람에게 ‘간과 눈’은 상관이 없다고 말하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할 것이다.
그러면 그 때와 지금의 차이는 무엇일까? 교육과 통념의 차이이다. 지금은 서구 문명과 사상이 주류를 이루면서, 우리의 교육, 문화, 정치, 보건 등 모든 분야에 밑바탕이 된다. 그래서 동양의 전통 사상과 문화는 잊혀지고 이를 바탕으로 성립, 발전된 한의학도 주류에서 밀려나 한 때는 미신으로 여겨졌던 적도 있었다. 제도권 교육인 초·중·고·대학교에서 서양의학의 해부학적 기초인 생물, 약학과 화학적 검사의 기초인 화학, 진단과 검사장비의 기초인 물리는 배우지만 한의학의 기본인 음양오행사상은 배우지 않는다. 그러니 서양의학은 익숙하고 한의학은 생소하다.
한의학에 영향을 크게 끼친 도가, 유가, 음양오행사상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문교육의 시간과 폭을 늘려 이를 통해 동양 사상의 냄새라도 맡게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동양 사상에 대한 지식도 없고 이해도 하지 못하니 실제로 이를 응용해 치료하는 한의학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할까?
한의학과 서양의학 모두 잘하는 부분과 못하는 부분이 있다. 두 의학의 차이점과 장점을 이해하고, 자신의 몸의 상태에 따라 적절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자료를 민간단체나 건강보험공단 같은 정부관련 부처에서 발간했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의사와 한의사의 이해 문제가 걸려 있어 쉽지는 않겠지만, 국민의 건강에 대한 효과적인 증진과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면 생각해 볼만한 문제다. /박찬정 자하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