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중앙 일간지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공동으로 실시한 ‘공정사회 관련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그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불공정한 사례나 관행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분야가 정치권, 법조계, 언론계였다. 모두가 사회지도층으로서 엄격한 도덕과 윤리를 요하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병역기피, 탈세, 전과자나 범법자,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비윤리적행위, 사생활 문란 같은 단어와 가까운 자들이 지도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공정사회를 만든답시고 어느 한 쪽의 기득권세력이 다른 쪽의 기득권 세력을 응징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국회가 ‘청목회 로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국회의원들의 처벌을 면하게 하기 위해 정치자금법을 날치기로 개정하려고 기도한 것이나, 지방 소재 법원의 향토 판사들이 정실 위주로 판결을 한다는 비난 등이 그런 여론을 밑받침해준다. 외교장관 딸 특혜취업과 유사한 사례는 사회 곳곳에 만연되어 있다. 불법과 탈법 그리고 편법이 판을 치면 부당한 이익이 창출되고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하며 빈부격차가 심화된다. 정치권력이나 재력에 편승하지 않고 부당한 제도와 관행을 바로잡고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사법 기능이 온전해야 공정 사회와 공정 경제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요즘 국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마이클 센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 첫 장에서 제시된 ‘가격 폭리’에 대한 사례는 이러한 고민을 잘 설명해준다. 태풍이 몰아친 지역에서 수요는 많고 공급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생필품을 비싸게 파는 것이 ‘공정 가격’에 해당하느냐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수급 원리를 중시하는 친시장주의자들은 높은 가격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나, 사회적 양심을 강조하는 법률가들은 ‘가격폭리처벌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분개한다.
높은 가격은 공급을 늘리는 요인이 돼 결국 자연스럽게 낮아지고 소비자 효용도 높아진다는 것이 시장을 중시하는 이들의 논리다. 동일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나 기업이 외부 조건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 경쟁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후적 결과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사전적 과정을 중시해야 ‘공평하고 올바르며 억울하지 않은’ 공정 경제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기회의 균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취업에서 학력, 나이, 지역 차별 등이 사라져야 하고 우리 경제 곳곳에서 특정 이익 집단들이 유무형의 진입 장벽을 만들어 힘들이지 않고 이익을 지속적으로 향유하는 지대 추구 행위도 근절되어야 한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원칙과 규정을 정하고 이를 철저히 준수하여 미래 예측이 가능한 신뢰 사회를 조성해야 한다.
공정사회는 말로만 부르짖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행동과 실천이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말 그대로 공평하고 올바른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지도층에 있는 사람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 토마스 아담스는 다른 사람을 바꾸려면 스스로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려고만 할 뿐 자신은 변화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정성이란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대들보와 같은 중차대한 가치다.무엇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원칙과 규정을 정하고 이를 준수하여 미래 예측이 가능한 신뢰 사회를 조성해야 한다. 기득권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게임 규칙 아래선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다. /김경우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