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루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털에/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 눈에/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대체로 봄이 되면 생각나는 이장희(1900~1929) 시인의 ‘봄은 고양이로다’의 전문이다. 이 시는 봄을 맞은 고양이가 한 낮에 졸음에 겨워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그래서 인지. 이 시를 읽으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춘곤증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춘분을 지나며 봄이 보내는 신호는 내 몸의 심장을 두드리는 ‘설렘’과 함께 나른한 ‘졸음’을 동반한다. 춘곤증 때문인데 이는 겨울의 기운에서 봄기운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에 우리 몸이 적응하지 못해 생기는 일시적인 증상이다. 의학적인 용어는 아니지만 춘곤증은 봄철 피로를 특징으로 하는 신체의 일시적인 환경부적응 증세다.
‘시에스타(siesta)’는 스페인의 ‘낮잠’ 문화다. 점심식사 이후 두세 시간씩 낮잠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 시간에는 관공서나 기업도 업무를 중단하고, 상점과 시장도 문을 닫는다. 그런데 2006년 스페인 정부가 관공서의 시에스타 제도를 폐지했다. 그러자 기업들도 점차 시에스타 폐지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시에스타가 스페인 GDP의 8%에 달하는 손실을 입히고 있다는 주장에서다. ‘지중해의 게으름’이란 비난을 받았던 시에스타의 폐지와는 반대로 낮잠을 권유하는 국가들도 늘어나고 있다. 프랑스는 국민들에게 15분 정도의 낮잠을 권장한다. 낮잠이 졸음운전을 예방하고 비만이나 우울증 등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결과에 의한 것이다. 일본 노동성 산업의학종합연구소도 점심시간 후 15분의 낮잠이 뇌파반응속도를 키우는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발표했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팔걸이의자에 앉아 바닥에 금속접시를 놓고 스푼을 쥔 채로 낮잠을 즐겼다고 한다. 잠에 깊게 빠지는 순간 스푼이 금속접시에 떨어져 잠에서 깨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즐긴 잠깐의 낮잠이 대략 15분이었다. 이런 낮잠은 끊임없는 상상력을 불러와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펼칠 수가 있었다.
이제 완연한 봄이다. 혹시라도 모를 춘곤증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온다면 달리처럼 잠깐의 낮잠으로 이를 극복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겠다. 이처럼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내는 15분을 낮잠에 쓴다면, 활발한 두뇌 활동은 물론이고 활력 충전으로 일의 능력도 배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