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등학교 주변 자동차도로 건널목에서 흔히 목격되는 장면은 놀랍다. 학생들이 차도를 건너갈 수 있는 녹색신호등이 점멸하고 붉은 신호등으로 바뀌어도 학생들은 줄을 이어 건너간다. 일단의 무리들이 모두 건너갈때 까지 신호등은 아예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신호등을 지킨다는 것은 설령 학교에서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청소년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겨야 하는 기초적인 규범일 것이다.
그러나 이 기초질서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다양한 이웃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능력에서 한국 청소년이 세계 최하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난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한국교육개발원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국제교육협의회(IEA)의 2009년 ‘국제 시민의식 교육연구(ICCS)’ 자료를 토대로 세계 36개국 청소년들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을 분석한 결과다. ICCS 자료는 해당국 중학교 2학년생 14만여명을 설문 조사한 것인데, 한국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 지표는 0.31점(1점 만점)으로 35위에 그쳤다.
세계화, 다문화 시대의 주역이 돼야 할 우리 청소년들의 ‘더불어 살아가는’ 능력이 이처럼 취약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 청소년들의 정부와 학교에 대한 신뢰도가 다른 나라보다 현격히 낮게 나온 것도 매우 실망스러운 결과다.
막연한 우려가 구체적인 수치로 드러난 것이지만 이런 조사결과는 매우 충격적이다. 우리 공교육의 무력화와 경쟁 위주의 입시교육이 청소년들의 인성을 심각하게 망가뜨리고 있음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가정교육을 맡고 있는 상당수 학부모들의 그릇된 가치관과 인성관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세칭 일류대 진학을 지상목표로 삼아 학생들을 몰아치는 데만 급급했지, 학생들의 건전한 인격 형성에는 별로 마음을 쓰지 못하는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사실 공교육의 본궤도 이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인 가치관을 은연중 주입하는 현상까지 나타난다.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 인성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개개인이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있다 한들 함께 일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 사회에 행복하고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당연하다. 교육 당국과 일선 학교들은 물론 각 가정의 학부모들도 청소년 인성 교육을 남의 일로 보지 말고 함께 개선의 지혜를 모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