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히 흐르는 강줄기를 바라보던 할아버지에게 강물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강물에게 물었지, 어떻게 이리도 먼 길을 왔느냐, 그리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느냐고.” “그랬더니 강물이 내게 이런 말을 하더구나.” “옛날 나도 작은 웅덩이를 가득 채운 적이 있었어요. 만약 제가 작은 것을 채우는 것에만 급급했다면 그 웅덩이로 만족했을 거예요. 제 친구들은 대부분 지금도 작은 웅덩이에 만족하며 살고 있죠. 미처 웅덩이도 못 채운 친구들은 저를 보면서 한껏 치켜세우기도 했죠. 그래서 저도 한때는 제가 최고인 줄 알고 우쭐했어요.”
“그래서 나는 ‘그런데 어떻게 그 작은 웅덩이를 벗어나서 먼 곳까지 여행하게 되었지?’하고 물었더니 강물이 대답하기를….”
“저는 바다를 보았거든요. 다른 친구들은 미처 보지 못했지만요. 깊고 넓은 바다에 대한 꿈을 꾸자 더 이상 웅덩이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죠.”
“그래도 편안한 웅덩이를 벗어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작다고는 하지만 웅덩이도 둑이 있으니 그걸 넘어야 하는 어려움도 있고 말이야 하고 물었더니….”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더 낮은 곳으로 몸을 낮추기만 하면 되거든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섭리를 표현하면서 겸손(謙遜)을 잘 설명하고 있다.
허영심을 버리면 남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겸손을 갖게 된다. 겸손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태도’를 말한다. 쉬운 것 같지만 실천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잘난 맛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겸손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일까? 허영심(虛榮心)이다. 분수에 넘치는 겉치레인 것이다. 자신과 자기 안의 허영심을 버리지 않으면 결코 자신을 낮출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겸손함은 자기자신을 지키는 훌륭한 스승이다.
우리 주위엔 겸손으로 덕을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건방지게 굴다가 손해를 보는 사람도 많다.
자리가 높은 사람일 수록, 상대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 수록 겸손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는 세상은 겸손을 지키는 사람보다 자신을 스스로 높이려는 사람이 더 많다. 겸손해지면 얻는게 더 많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의원에 당선된 이후 의정활동을 벌이면서 많은 주민과 공무원들과 접촉하고 있다.
혹 민원과 관련해 겸손의 미덕을 외면하지 않았는지. 최근 한 여성시의원의 사태를 짚어보면 새삼 교훈으로 남는다. 자기반성이 늘 따라 다니는 것도, 바로 도덕성과 청렴을 최우선하는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한 여성시의원의 사태는 정치인으로서 겸손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한 사건이다. 겸손만큼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더 좋은 처세술은 없다. /최철규 경기도의원 (한·하남·기획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