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지금의 시간이며 미래는 지금의 시간으로부터 그 이후다. 인간의 가치 지향 양태에 따라 현재 중심적인가 아니면 미래지향적인가로 나눌 수 있다. 그 경계를 설정하는 단순한 시간 자르기보단 현재와 미래를 두고 사색하는 인간의 사고는 본원적으로 다르다.
먼저 현재 중심적 사고(思考)에 따른 행동의 패턴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미래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다. 미래를 허수로 본다. 실재가 아니다. 현재만이 실재이다. 현재는 무엇으로 인식할까? 감각을 통한 지각이다. 현재적 감각의 지각화이다. 유일한 존재는 현재라는 배위에서만 가능하다. 그 배가 어디로 어떻게 가든지 상관 없다. 현재 두 눈 깜빡이며 호흡하고 맛을 보며 듣거나 보고 느낌만이 현재를 지각한다.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적 관점이다. 확실한 실증주의적 태도나 경험적 태도를 견지한다. 관념이 스며들 여지가 없다.
미래의 양태는 어떤 것일까? 우리는 항용 미래지향적 가치에 대해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미래는 도래하지 않은 시간이다. 심리적 부담이 적다. 현재에서 미래로의 항해는 예측가능하나 불안하고 예측 불가능한 것 같으면서도 안심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미래는 관념이라고 할 수 있다. 감각을 통한 이미지의 형상이 어렵다. 단지 관념의 바다를 다니다 보면 어느 곳에선가 정박해 쉬어가기도 하고, 조타를 상실해 방랑하기도 하고, 폭풍을 만나 생존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그런 사건들이 현재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적 관점이다. 그러나 위험한 것은 미래라는 사기술에 걸려들 수도 있다는 점이다. 도래하지 않은 발생하지 않은 사건이기 때문에 자칫 현혹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미래가 있기에 희망이 있으며 어떤 운명적 만남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현재는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면서 과거로 흘러가버리지만 미래는 형상의 원인들이 투명한 부유물처럼 떠다닌다. 감각할 수 없다. 미래이기 때문이다. 미래가 어떤 시간과 공간에서 창조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형상들이 만들어지는 현재가 있기에 그에 앞선 시기를 미래라고 이해 할 수 있을 뿐이다.
온 우주에는 나선형의 원반모양의 은하계가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많다고 한다. 또한 우주는 끊임없이 팽창하며 생성한다. 동서남북을 가릴 길 없이 육안으로 포착할 수 있는 우주는 현재이다. 현재적 감각이 그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폭발 후 사라지는 백색왜성 같은 존재 혹은 블랙홀은 무엇일까? 그것은 형상에서 사라지는 것이기에 과거인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 사라진 형상들은 동서남북 할 것 없이 형상을 이룰 수 있는 기(氣)로 우주에 가득할 것이다. 사라지기만 했을 뿐 없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가 미래로 이어지는 것이다.
시간은 직선적 팽창과 나선형의 회전이 공존하는 이율배반이다. 처음과 끝이라는 존재의 개념도 또한 모순이다. 창조 속에 진화, 진화 속에 창조가 존재하며 직선 위에 원형이 원형 속에 직선이 자리 잡은 이해 불가능한 모순율. 현재와 미래는 그렇게 무량겁(無量劫)의 찰나(刹那)이고, 찰나(刹那)였고, 찰나(刹那)일 것이다. /진춘석 시인
▲ 1992년 시문학 등단 ▲ 한국문인협회 회원 ▲ (사)한국문인협회 평택지부장(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