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미국 남부의 흑인들은 대통령이 되기는 커녕 투표권조차 갖지 못했다. 그들은 백인과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도, 같은 극장에서 영화를 볼 수도 없었다. 심지어 버스에서조차도 앞자리는 백인들을 위해 비워둬야 했다. 그것이 법이었다.
1955년 12월 1일 미국 앨러배마 주 몽고메리 시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흑인여성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로자 파크스. 버스에 올른 그녀는 늘 그랬듯 ‘흑인석’ 맨 앞줄 빈자리에 앉았다. 몇 정거장을 지나자 버스에는 빈자리가 남아 있질 않았고, 백인들이 버스에 올랐다. 빈자리가 없어 서있는 백인들을 본 버스운전사가 파크스를 비롯한 4명의 흑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할 것을 요구했다. 세 사람은 일어났지만 로자 파크스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이에 백인인 운전기사는 경찰을 불렀고, 경찰은 그녀를 체포했다. 파크스는 몽고메리 시의 규칙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돼 벌금을 물었다. 파크스는 다시는 이런 굴욕감을 느끼면서 버스를 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흑인이 평등하게 대접받고, 흑인 운전기사가 고용되며 빈 좌석이 먼저 탄 사람들을 위한 것임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질 때까지 투쟁하기로 했다.
얼마 후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이 일어났다. 매주 월요일마다 모든 흑인들이 버스를 타지 말자는 것이었다. 이는 흑인민권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이로 인해 버스회사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승객의 75% 이상이 흑인이었으므로 당연한 결과였다. 버스 보이콧은 무려 382일 동안 계속되며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마침내 1956년 6월 19일 지방법원은 흑백분리를 규정한 몽고메리 시의 조례가 수정헌법 14조를 위반했다고 판시했고, 4개월 뒤인 11월 3일에는 연방 대법원이 버스에서 흑인석과 백인석을 나누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흑인민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몽고메리 시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54년 1월에 있은 덱스터 애브뉴 침례교회의 초청설교가 계기가 됐다. 그 후 5월에 이 교회의 목사가 된 그는 파크스 사건이 일어난 지 나흘 뒤인 12월 5일에 몽고메리 진보연합의 회장으로 선출된다. 그렇게 1954년 몽고메리에서 시작된 킹 목사의 꿈은 1968년 4월 4일 멤피스 로레인 호텔에서 거대한 음모에 휩쓸려 암살당하기 까지, 인종차별에 대항한 치열한 싸움의 원동력이었다. 평소 그가 즐겨 했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이 말은 그대로 자서전의 제목이 됐다./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