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에는 성역이라고 생각하는 곳들이 있다. 이런 곳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몸가짐이나 언행을 주의하게 된다. 한국인들에게 있어 성역은 어디일까? 우선 많은 종교인들의 경건하게 예불,예배하는 사찰이나 성당, 교회가 그렇다. 또 스승의 교수 영역인 학교나 엄정한 법의 판결 장소인 법정, 생명을 다루는 수술실 등도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에겐 성역이나 다름없다. 공연예술인들에겐 무대가 성역이고 국회의원들에겐 의사당이, 운동선수들에겐 링이나 그라운드, 코트가 그러하다. 그래서 상식적인 국민들이라면 내 분야가 아니더라도 내가 믿는 종교가 아니더라도 상대방의 성역은 존중해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성역이 무시되고 있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는 의원들끼리의 고성과 치고 박는 난투극이 벌어지고 있다. 집단난투극은 성전인 교회에서도 벌어졌다.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의 한 유명교회에서 벌어진 난투극 보도는 믿고 싶지 않은 뉴스다. 이 교회 정상화 비상대책위원회 회원 50여명과 경호 용역업체 직원 40여명이 오전 예배 도중 예배당으로 들어가 반대 측 신도 수십여명과 몸싸움을 벌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신도 일부가 바닥에 넘어지고 폭행당해 10여명 가량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내 화성시 한 대학에서는 장학금 횡령사건 연루 교수들 간의 다툼으로 한명이 숨지고 한명이 화상을 입는 일도 벌어졌다. 지난 8일 동료 교수에게 화상을 입힌 후 실종됐던 교수가 10일 이 대학 체육대 옥상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비극을 부른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대학생을 교육시키는 신성한 장소에서, 그것도 교수들끼리 난투극을 벌이다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최근 카이스트에서 4명의 학생이 자살한 데 이어 10일 촉망받는 교수까지 자살하며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서남표 총장의 한 발언도 국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서남표 총장은 지난 5일 한 학생과 면담을 하면서 “미국의 명문대는 자살률이 더 높다”고 발언했다는 것이다. 지성의 전당인 대학을 책임지는 사람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학생의 연이은 죽음을 보면서 그런 식의 발언을 했다는 것은 그 스스로 대학을 교육의 성역으로 보지 않고 무한 경쟁의 싸움터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성역이 점점 사라지는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서글프고 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