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양요(丙寅洋擾)는 1866년(고종 3년)에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범한 전쟁이다. 프랑스가 병인양요를 일으킨 진짜 목표는 천주교 박해에 대해 보복보다는 자국의 통상이익을 위해 조선의 문호를 개방시키는데 있었다는 역사학자들의 견해도 존재한다. 병인양요 때 조선군의 반격에 패퇴한 프랑스군은 자국으로 철수하면서 강화도에 소장돼 있던 외규장각을 불태우고 고도서를 약탈해 자국으로 가져갔다. 그때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297권 가운데 1차분이 145년만인 14일 고국으로 귀국했다.
이번에 되돌아온 외규장각 도서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유일본 30권 중 일부를 포함해 총 80여권으로, 다음달 말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돌아온다. 비록 대여형태지만 5년 단위의 갱신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의 영구반환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는 7월 19일부터 9월 18일까지 환수문화재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는 145만에 고국 땅을 밟는 외규장각 도서를 환영한다. 아울러 이번에 이 자료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아끼지 않은 관계자들의 노고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외규장각 도서 귀환의 일등공신은 ‘직지대모’라고 불리는 재불 역사학자 박병선 선생이다. 83세의 고령으로 재작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 수원에서 약 1년간 항암치료를 받은 후 작년 11월 프랑스로 되돌아가서 병인양요에 대한 정리작업을 하고 있는 박 박사는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근무할 때 외규장각도서를 최초로 발견했다. 또 한사람의 숨은 공신은 외규장각 도서들이 한국으로 돌아 올 때까지 실무협상을 진행한 주불대사관 유복렬 정무참사관이다. 그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 문제가 교착상태를 거듭해 영구 미제에 빠질 뻔한 위험을 해결한 인물이다.
사실 ‘5년 단위 갱신 대여’ 방안도 프랑스국립도서관 직원들의 거센 반대에 부닥쳤다. 이에 따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한-불관계를 고려해 직접 결단을 내렸을 정도로 힘든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유참사관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고 한다. 박병선 선생과 유복렬 참사관의 애국심과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가 불법으로 약탈해간 자료를 대여라는 형식으로 되돌려 받는다는 것은 분명 어불성설이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 ‘대여’를 ‘반환’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대여’가 최선책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대한민국의 국격을 생각해서라도 ‘반환’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