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커피를 마시며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을 가리켜 ‘파노플리 효과 (effect de panoplie)’라고 한다. 상품을 통해 특정 계층에 속한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것을 장 보드리야르가 ‘파노플리 효과’라고 부른데서 유래됐다.
커피는 원산지 에티오피아에서 ‘카파(caffa)’ 로 불렸다. 이 말은 ‘힘’을 나타내며, 동시에 커피나무가 자생하는 곳의 지명이기도 했다. 이것이 아라비아에서 ’qahwa’가 되고, 터키에서 ‘카베(kahve)’로,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 ’카페(cafe)’가 되고, 영국에서는 ‘아라비안 와인’으로 불리다 17세기 중반 헨리 블런트에 의해 오늘 날과 같은 ‘커피(coffee)’가 됐다.
커피는 예술의 창작활동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 오스트리아의 ‘보그너’나 ‘실베르네’ 같은 커피 하우스에는 슈베르트와 베토벤, 베를리오즈, 리스트 등이 단골로 드나들었다.
프랑스는 소르본느 대학 인근에 탄생한 ‘카페 프로코프’가 성공하면서 카페 시대의 막을 열게 된다. 그리고 커피광(狂)이었던 오도레드 발자크가 1830년에 발표한 ‘파리 지붕 위의 한 위인’이라는 소설이 프랑스 카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편 커피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때는 고종 19년인 1882년이다.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 당시 커피를 즐긴 것이 시초다. 이때의 커피는 설탕덩이 속에 커피 가루가 들어 있는 것이었다.
최초로 인스턴트 커피를 발명한 사람은 뉴욕에 살던 일본인 화학자 가토 사르토리다. 그는 1899년에 인스턴트 커피를 발명하고 미국박람회에 ‘soluble coffee’ 라는 이름으로 출품하지만 안타깝게도 특허는 받지 못한다.
그러다 2년 후인 1901년 미국인 G.위싱턴이 진공건조법으로 제조한 분말 커피에 ‘인스턴트커피’라고 이름 붙여 특허를 받게 되는데 일찍이 이 인스턴트 커피에 주목한 미 국방성은 1907년부터 미군 군용품으로 커피를 채택해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커피는 이미 일상에 깊게 뿌리를 내렸다. 테이크 아웃 브랜드 커피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며 마치 뉴요커가 된 듯한 젊은이들의 풍경은 더 이상 낯설지가 않다. 매장 수 기준 상위 8개 브랜드 커피전문점만 해도 지난해 말로 2천 개를 넘어섰다. 인스턴트 커피의 대명사인 국내 커피믹스 시장은 1조원대로 추산된다. 어지간한 식당마다 커피자판기가 설치돼 있어 식사 후엔 으레 커피를 마신다. 이쯤 되면 ‘커피 공화국’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