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킥 더 버킷(kick the bucket)’은 ‘양동이를 걷어차다’라는 뜻 이외에 ‘생을 마감하다’라는 의미도 있다. 여기서 온 말이 ‘버킷 리스트(bucket list)’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놓은 리스트다. 버킷 리스트의 의미는 삶을 돌아보고 주어진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삶에 지치고 방황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만의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 보는 것은 어떨까.
1817년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가 자신이 가장 바라는 삶을 스스로에게 선물한다. 그것은 2년 동안의 월든 호숫가에서의 생활이었다. 그는 고향인 콩코드로 돌아와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기 시작한다. 침대 하나, 탁자 하나, 의자 하나, 벽난로 하나, 책상 하나, 그것이 오두막 살림의 전부였다. 사람들이 ‘성공’이라 부르는 삶에 회의를 느낀 헨리 데이비드 소로. 그는 일한 만큼만 먹고, 먹을 만큼만 생산하는 자연주의 삶의 방식을 위해 월든 호수를 찾았다. 그렇게 자연과 함께 한 2년 2개월 동안 그가 쓴 돈은 단돈 28달러. 그는 자연으로부터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삶의 경건함을 깨달았다.
숲에서 산 지 1주일이 채 되기도 전에 오두막에서 호수까지 그의 발자국으로 길이 생겨났다. 그가 그 길을 사용하지 않은 지 5년이 지나도록 그 길은 뚜렷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큰 길은 얼마나 많은 발자국을 견뎌낸 것일까. 자연은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자연은 일정한 걸음걸이로 삶을 영위한다. 봄이 오면 꽃봉오리는 서두르거나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눈에 띄지 않게 부풀어 오른다. 이처럼 모든 만물은 이치에 맞게 스스로를 성장시켜 나간다. 그런데 인간은 아주 사소한 일에도 영겁의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서두르는 것일까. 소로는 하나의 꽃봉오리에서 지난 삶을 반성하는 법을 배운다. 소로의 오두막이 보존된 월든 호숫가에 그의 말이 적힌 팻말이 있다. ‘나는 삶의 본질과 대면해 내 뜻대로 살기 위해 숲으로 왔다. 만약 숲이 가르쳐준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내 삶이 헛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한번쯤 만개한 4월의 벚꽃 길을 걸어보라. 꽃비를 맞으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봄 한철/격정을 인내한/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이형기의 ‘낙화’를 떠올리며 자신을 위한 버킷 리스트를 생각해 보라. 기회는 달아나기 쉽고, 경험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되며, 판단은 어렵기만 하다. 히포크라테스의 말이다. /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