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의 번화한 상가를 지나 모퉁이를 돌면 작은 약국이 있다. 어느 날 퇴근길에 이 약국 모퉁이를 돌던 찰나, 골목 끝 으슥한 곳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서성거렸다. 막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한 시간이라 ‘귀가길 아이들이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치려는데 갑자기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골목에는 두어 대의 승용차가 주차돼 있는데 차와 차 사이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배를 잡고 고꾸라지는 실루엣이 보였다. “야! 니들! 거기 뭐니?” 아줌마라 그랬는지 아이들은 “당신은 뭐요?”하는 자세로 일제히 나를 노려봤다. 짧은 다리로 총총 걸어갔다. 낯이 익다. 중학교 1,2학년쯤 보이는 그 녀석들도 나를 아는지 금새 표정이 바뀐다.
한 녀석을 괴롭히는 것에 대해 갖가지 이유를 줄줄 댄다. ‘더럽다, 찌질하다, 돈이 있는데도 안 빌려준다. 고자질쟁이, 곁눈으로 째려보았다.’ 이유를 불문하고 물었다. “니들 밥들은 먹었니?” 분식집 형광등 아래서 본 아이들은 지극히 평범한 또래 녀석들이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공공의 적이 주는 스트레스를 들어주며, 또 그 대상자였던 아이의 상황을 들어주며 떡볶이와 순대와 튀김을 먹였다.
“아줌마, 앞으로는 저 친구 안 괴롭힐게요. 약속해요.” 반성하는 자세였다. 아이들에게 잔소리는 되레 반발만 불러올 것같아 자제하고 몇 마디 당부와 격려로 그쳤다. 처음보다 한결 덜 건들거리는 모습으로 돌아가는 아이들 뒤에서 제발 그 약속이 진심이기를 바랐다.
참담했다. 아이들이 지적한 공공의 적. 이 아이들의 무분별한 판단과 분별력을 탓할 수가 없었다. 진짜 공공의 적을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갈수록 청소년 범죄는 더 대담해지고 지능적이다. 바른 소리를 해야 하는 어른들은 점점 줄어들고 급변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아이들은 휘청거린다. 끊임없는 성적에 대한 압박과 살인적 경쟁구도,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를 꿈꿀 공간과 여유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십 여년을 정치하는 어른을 옆에서 모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토론하고 주민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했다. 그 사이 아이들은 이미 성장해서 제 갈 길을 찾아 갔다. 그래서 아이들은 저절로 크는 줄만 알았다. 온갖 제도와 규범들이 안전장치가 돼 아이들을 보호하겠지 했다.
온통 사건 사고와 범죄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 그 속에서 길을 잃고 비틀대며 걷는 아이들과 불안한 미래에 꿈을 채 만들지도 못하고 부초처럼 떠도는 이 아이들의 가슴을 무엇으로 설명하랴. 적어도 친구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괴롭히는 아이들이 끊임없이 양산되는 한 아이들의 낙원은 요원할 것만 같다는 것이 내 편견이기를 바래본다. /전경애 인천남구의원(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