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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철들어 산다는 것

 

주말이면 이따금 지인들과 부락산에 오른다. 보통 서너 명이 함께 산에 오르는데 왕복 세 시간 정도로 길이 완만해서 나 같은 초보자도 산책하는 마음으로 걷기에 그만이다.

그러나 평소 엉뚱한 곳에 정신을 잘 빼앗기는 나는 번번이 주변을 탐색하며 한눈을 판다.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새들과 눈도 마주치고, 물이 오르는 나무들도 만져보고, 쪼그리고 앉아 작은 야생화에게 이야기도 건네고, 뺨을 스치는 바람에 잠시 딴 세상에라도 간 듯 눈을 감기도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행에서 뒤떨어져 지인들을 속 터지게 만들기 일쑤인데 일행의 타박에도 초지일관이라 지인들은 매번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참 철없다. 언제 철들래’ 한다.

산이 좋아지는 이유 중 하나는 조금만 눈을 돌려도 지난 주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늘 가던 길을 가는데도 지난 주에 보지 못했던 꽃이나 새싹이 피어 있고 나무 끝색이 달라져있다.

늘 가던 길을 가는 데도 지난 번에는 꼼짝 않고 있던 다람쥐가 활발하게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 다니는 것이 눈에 띈다. 정말 봄이 왔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산에서는 촉각이나 시각, 후각도 되살아나 행여 비 오는 날 산에 오를라치면 수많은 나뭇잎들이 비에 닿아 내는 소리와 더불어 싱그러운 냄새가 온 몸의 세포를 살아나게 만든다.

바쁜 일상으로 자연의 변화를 무심히 지나치던 내게는 모든 것이 신기한 모습이다.

굳이 산 정상을 정복하거나 건강을 위해 오로지 앞으로만 걷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변화를 살피며 내 자신도 그런 자연의 순리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층 여유로워지는 것이 내가 산을 오르고 산이 점점 좋아지는 이유인 것이다.

‘철이 없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리분별이 없어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분간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옛 조상들은 달력이 없어도 늘 절기를 따져 자연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으로 농사시기를 가늠했으며 그런 것들은 나이 들수록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자연의 사소한 변화만으로도 내일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를 분간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소위 ‘철든 사람’ 또는 ‘어른’으로 대우했고 철이 없어 자연의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그런 철을 아는, 철든 어른에게 어떤 일이든 물어보며 따르곤 했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저절로 철이 들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이 들수록 자연과 더불어 살고 싶어 하는 심리와 일맥상통한다.

현대인들이 절기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은 그만큼 우리 생활이 자연에서 멀어졌다는 것을 방증하는 일이기도 하며 자연과 멀어지면서 사람들은 점점 철을 온몸으로 느끼지 못하고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이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인간도 스스로 싹을 틔우고 열매 맺고 무르익고 시들어가야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철이 든다는 건 경제논리에 해박하다거나 자기 잇속 차릴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이라는 고은 시인의 시처럼 자연을 통해 자신의 참 모습을 돌아보는 때라야 정말로 철이 드는 게 아닐까.

▲ <애지> 등단(2009년) ▲ 한국문예창작학회 회원 ▲ 호접몽 동인 ▲ 고려대학교 인문정보대학원 석사과정 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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