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4월 22일, 시내버스가 경성 거리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경성부가 직접 운영하기 위해 일본에서 들여온 상자형 버스로, 14석의 좌석 외에 가죽 손잡이 8개가 달려 있어 모두 22명이 탈 수 있었다. 노선은 3개, 요금은 구간당 7전, 운행 간격은 10분이었다. 경성부는 부영(府營)버스 운행을 앞두고 12명의 여차장(안내양)을 모집했는데, 75명이 지원했다. 그중 한국인이 73명이었고 여고보 출신도 2명이나 됐다.
그러나 서울보다 앞서 우리나라에 시내버스가 처음 도입된 곳은 대구다. 대구에는 1920년 7월에 우리나라 최초로 시내버스가 등장하게 되는데 대구 호텔 사장이었던 베이무라 다마치로(米村玉次郞)가 일본에서 버스 4대를 들여와 대구역을 기점으로 대구 북쪽의 팔달교와 동쪽의 동촌까지를 오가는 노선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총독부로부터 시내버스 운영권을 받은 경성부는 경성역을 기점으로 남대문~부청앞~총독부~창덕궁~초동~필동~저동~조선은행을 거쳐 경성역으로 되돌아오는 순환 코스로 운행을 시작했다. 운행 시간은 여름철에는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였고, 겨울철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5세 미만 어린이는 한 명까지 무료였다. 그러나 당시 버스요금은 전차보다 비싸 시민들이 외면하는 바람에 버스 운영권은 얼마 후 경성전기주식회사로 넘어간다.
한국전쟁 이후 전국에 등록된 버스는 2만 대를 넘어 설 만큼 급속한 성장을 한다. 당시 버스는 단 한 명의 승객이라도 더 태울 요량으로 상습적으로 정류장에 오래 머무르기 일쑤였다. 이에 대한 승객들의 불만으로 정부는 급기야 1954년 4월, ‘내리고 타면 바로 떠나기’ 운동을 실시한다. 1974년 8월 15일, 지하철 개통과 더불어 점차 승객 수가 줄고 급격한 산업화로 젊은 여성들이 공장으로 몰리면서 안내양도 점차 그 모습을 감춘다. 이에 따라 1983년 7월부터 ‘시민자율버스’ 운행이 확대되고, 1986년에는 ‘앞문 승차, 뒷문 하차’ 와 함께 자율버스제가 본격화 된다. 1985년 10월 첫 버스전용 차로제가 시행되고 1986년 7월에는 모든 버스에 냉난방 시설이 설치된다. 이어 1996년 7월 충전식 버스카드가 도입되면서 회수권과 토큰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이어 2004년 7월에는 준공영제에 따른 중앙차선 버스전용차로제가 도입됐으며 2006년 4월부터는 버스기사 보호를 위한 격벽이 의무화됐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전광판이나 도착안내 방송을 통해 버스의 진행상황을 수시로 알려준다. 버스의 진화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이해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