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철이는 목발을 짚고 구청을 다니는 행정직 공무원이다. 말하자면 장애를 지닌 사람인 것이다. 얼굴은 항상 밝은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생각 역시 매우 긍정적이었다.
고향이 같은 해남이라 종종 만나서 막걸리 잔을 기울인다. 서로 바쁘고 근무처가 다르니까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나 어쩌다 만나게 되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고향 얘기서부터 아직도 밭에서 일하시는 근력 좋으신 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종 긍정적인 화제로만 가득하다. 목소리도 경쾌하고 얘기를 풀어나가는 솜씨 또한 구수하고 재미가 있다. 얘기 중간 중간에 내비치는 번득이는 예리함이라든가 섬광처럼 비치는 천재성은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귀중한 것들이었다.
애초 그는 기획 부서에 배치돼 일을 했다. 그를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적재적소의 배치라고 생각을 했다. 현재는 총무부서에 근무하고 있는 그가 적격의 기획부서와는 떨어진 총무부서에서 일을 한다. 뭔가 잘못됐다고 나는 한편으로 생각했다. 언젠가 영화에 관한 기획의 건을 토의한 적이 있었다. 영화에 대해 그리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그지만 워낙 우수한 두뇌의 소유자이고 보니, 속으로 나는 놀랐다. 영화에 대해서는 전문적은 아니었어도 그것을 기획하는 분야에서는 그 천재성을 여실이 발휘한 것이었다.
영민한 머리에 건실한 사고방식과 생활철학을 가진 경철이와 어쩌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설 때면 목발을 짚고 방을 걷고 마루를 내려설 땐 보기에 몹시 안쓰러웠다. 거북한 거동은 보는 이를 몹시 안타깝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안타까워하는 나의 시선과 마주치면 그는 씽긋 웃어 보였다. 그리고 머리를 내흔들었다. 그런 시선으로 보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저 평범하게 보아주면 그만이라는 표정이었다. 그의 몸은 움직이기가 불편했지만 정신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 누구 보다 건전했고 밝았다.
“박선배, 장애와 비장애는 차이가 없는 거예요.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전혀 차이가 없는 것이니까, 그저 동등하게 봐주고 대해주면 그만인 거예요”
나와는 한 살 차이라서 호칭을 선배라 했다. 그 호칭은 나로서는 듣기에 기분이 좋았다. 나 보다 나이가 한 살 아래인데도 세상사를 관조하는 눈은 나보다 월등 높은 것을 나는 깨닫고 있었다. 그의 인생이야기는 나에게는 매우 귀중하게 들렸다.
오늘은 제 31회 장애인의 날이다. 나라에서 정한 법정기념일인 것이다. 매우 뜻 깊은 날이다.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의욕을 높이기 위해, 이 날을 제정했다. 사려 깊은 일이다. 장애(障碍)도 종류가 다양해서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거동을 하지 못하는 중증 육체적 장애나, 사리를 전혀 분별하지 못하는 정신적 장애는 주변의 이해와 도움이 절실히 요구된다.
신(神)은 인간에게 한꺼번에 모든 불행을 주시지 않는다고 한다. 경철이의 경우를 보면, 비록 목발을 짚는 장애를 주셨지만, 명석한 두뇌도 주셨다. 한쪽이 불행이면 다른 한 쪽은 행운을 지닌 셈이다. 그러한 것을 잘 알고 있는 경철이가, 우울한 문자를 보내더니, 오랜만에 나타났다. 속이 상하는 일이 있어 고향엘 가서 다 풀고 왔다고 했다. 속상하는 일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누군가가 그에게 막말을 한 것 같았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엘 가니, 좋은 추억만 떠올라 도시에서 얻은 푸념거리는 모두 날아갔다는 것이었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은 보다 여린 심성을 지닌 탓으로 그를 대하는 말과 행동은 항상 조심스러웠다. /박병두 작가·경찰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