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살 눈부시고 봄바람 싱그럽다. 4월은 너무 아름다운 것들이 많아서 행복하다. 봄꽃들이 우리 마음을 환하게 밝혀준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 꽃피울 날들을 기다리며 긴 겨울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 그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어서 길을 나선다. 광릉 수목원 가는 길목에 우렁 쌈밥으로 유명한 곳이라 언제나 손님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쌈밥을 맛있게 먹고 봄나물을 캐러 들판으로 나갔다. 쑥은 제법 많이 컸고 냉이는 곧 꽃이 피기 직전이다. 이 계절에 한 두번 맛보지 않으면 쉽게 먹을수 없는 귀한 것들이다.
우리들은 준비해온 도구들을 꺼낸다. 칼과 장갑 봉투 호미를 가져온 친구도 있다. 아주 작정을 한 모양이다. 나는 냉이만 캐기로 한다. 이것 저것 캐다 보면 한가지도 제대로 맛볼수 없을 것 같아서…. 포근 포근한 흙의 감촉도 좋고 냉이의 향도 너무 좋았다. 평화로운 들판에서 냉이 무침에 막걸리 한잔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괜시리 침이 꼴깍 넘어간다. 너무 욕심 부리지 않고 한 웅큼만 캐기로 한다. 저녁 식탁에는 들판의 향기가 춤을 출 것이다. 갑자기 울컥 목이 메인다. 이 좋은 날에 십여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잡히지 않는 그리움 하나. 어머니의 일생은 굴곡진 삶이었다.
어머니의 성품은 조용하고 말수가 적으셨다. 큰 소리를 별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치마폭에 싸서 키우시던 자식 사랑이 각별했다. 그 덕분에 결혼 할 때까지 손에 물 안묻히고 곱게 살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따뜻하지 않았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 옆 라인에 살고 계셨는데 어느 날 나에게 음식을 먹으면 가슴이 답답하다고 하셨다. “연세 드셔서 그런거야”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딸이 곁에 살고 있어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병원에 한번 가봐야 겠다고 하시길래 성모병원에 모시고 가서 검사를 받으니 위암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때만 해도 주변에 암이라는 병이 지금처럼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수술 날짜를 잡고 수술실로 들어 가셨는데 담당의사가 보호자를 불렀다. 남편이 들어갔다. 나는 차마 들어 갈 수가 없었다. 복개한 상태에서 암이 퍼진 것을 보여 줬다고 한다. 수술은 하지도 못하고 다시 꿰매기만 한 것이다. 어머니는 아무 것도 모르고 회복실에 있는 줄 알고 계신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음식을 먹을 수가 없고 여위어만 갔다. 피골이 상접하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병원에서 집으로, 집에서 병원으로 왔다 갔다 하며 9개월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미 어머니의 혀가 굳어 가고 있었다. 힘겹게 “우애 있게 살아라”가 이승에서의 마지막 남기신 말이었다.
그날 저녁 자식들이 다 모인 가운데 한줄기 눈물을 남기고 조용히 떠나셨다. 장지에서 나는 절규 했다. 산자락이 떠나갈 정도로 꺼이 꺼이 목놓아 울었다. 잔인한 4월! 어머니를 연초록 산자락에 묻고 내려 오는 산길에 사과 꽃잎이 눈꽃처럼 날렸다. 어머니는 꽃길로 가신 것이다. 연분홍 사과 꽃잎을 밟고 이승에 대한 마지막 아쉬움의 눈물이었을까. 그토록 쏟아지던 봄비는 모든 것들은 떠나간 후에야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 가까이서 마주 볼 때는 존재의 고귀함을 모르다가 커다란 빈 자리가 생긴 후에야 나를 돌아보게 되는 어리석음. 부모는 자식들이 잘 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고 그저 세월의 흐름따라 물결처럼 서둘러 떠나가는 봄날 같은 것!
오늘 들판에서 어머니처럼 포근한 흙을 만지니 더욱 그리운 어머니. 당신의 둥근 방 그 위로 사과 꽃잎 지고 있나요? 그날처럼…. /허은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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