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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부지런도 못해서야

 

선비 황상(黃裳)은 정약용의 제자다. 다산이 귀양지 강진에서 초당을 열고 아이들을 가르쳤다. 어린 황상은 초당 주변을 쭈뼛거리며 글을 배웠다. 다산이 황상에게 물었다. “너는 어찌하여 공부를 띄엄띄엄 하느냐?” 황상이 대답하길 “저는 머리도 나쁘고, 앞뒤가 막혔고, 분별력도 모자랍니다. 이런 제가 과연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다산은 어린 황상이 평생을 마음에 새기고 뼈에 새긴 말을 해준다.

“할 수 있다. 문제는 저 스스로 똑똑하고 잘 났다고 생각하는 데서 생긴단다. 한 번만 보고도 척척 외우는 사람들은 그 깊은 뜻을 음미할 줄 모르니 금세 잊고 만다. 또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들떠 가벼워지는 것이 문제다. 너처럼 스스로 둔함을 아는 아이가 꾸준히 노력을 한다면, 그 둔한 끝으로 구멍을 뚫기는 힘들어도, 일단 뚫고 나면 웬만해서는 막히지 않는 큰 구멍이 뚫릴 것이다. 꼭 막혔다 뻥 뚫렸으니 거칠 것이 없을 것이다. 미욱함을 스스로 알기에 이를 닦고 또 닦으면 마침내 그 광채가 눈부시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저 첫째도 부지런함이요, 둘째도 부지런함이고, 셋째도 부지런함이 있을 뿐이다. 너는 이를 평생 잊지 말아라.” 황상이 물었다. “그러자면 어떻게 해야 부지런할 수 있을까요?” 다산이 말했다. “마음을 다잡아 다른 데로 달아나지 않도록 꼭 붙들어 매야한다.”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이유로 처음 다짐했던 각오와 목표가 차츰 느슨해져 흔들리게 되고, 어영부영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시작했을 때의 여건이나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고, 자신의 마음이, 열정이 식어지거나 변할 수도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쉼 없이 매진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오로지 앞만 보고 작정한데로 노력을 다 해보지만, 어느 때 쯤에서는 잠시 쉬고 싶기도 하고 손을 놓아 버리고 싶기도 하다. 시작은 했는데, 이제 와서 어찌해야 좋을지 망설이게 된다. 나아가기도 그렇고, 뒤로 돌리기는 더더욱 그렇고, 그렇다고 제 자리에 있기도 난감할 때가 있다.

생각해보자. 과연 나는 지금까지 부지런함에 떳떳한가? 처음과 지금, 그 뜻과 다짐이 변함없는데, 이처럼 느슨해지고 게을러짐은 무슨 까닭인가? 지금 손을 놓고 움직이지 않으며, 처음과 끝에 대해 무언가 빌미를 궁리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그저 게으름에 주저앉을 수는 없다.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환경이나 여건을 갖춘 것도 아닌데, 게으름이 끼어서야 어떻게 되겠는가. 부지런함마저 지키지 못 한다면 과연 내가 해 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봄의 화려함에 치인 탓인지, 그 넘쳐 오르는 약동에 걸려 넘어진 건지, 까닭 모르게 기운이 빠지고 일상이 괜스레 귀찮아진다. 게으름에 젖어 풋잠에 들며 나며 시간을 잡아 구기다 보면, 일상이 깊은 구렁텅이로 차차 빠져들어 가는 모습을 발견하고 드디어 깜짝 놀란다. 생각 없이 긴장을 놓아버린 후회에 마음이 다시 조급해진다. 부지런하지도 못한 이 게으름에 스스로를 꾸짖게 된다. /김춘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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