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버스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같은 시각에 승차했다는 공통의 행복감일 것이다. 하지만 시내의 좀 비싼 식당에서 다른 집 가족과 조우하면 마음이 개운치 않다. 그 이유는 각자 각자 다를 것이다.
그런데 등산길에 만나는 사람은 99.9% 모르는 이들이다. 그래서 등산 중에 아는 이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악수를 나누고 사진을 찍기도 한다. 이 또한 같은 시각에 같은 등산로를 간다는 사실이 ‘운명적 만남’까지 격상해 해석하기 때문일 것이다.
상가에 가면 조문하기 보다는 누구나 아는 이를 찾기 위해 접객실을 살핀다. 조문 후에 앉을 자리를 미리 살피는 것일까? 결혼식에 가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혼주를 만나고 나면 식당부터 알아본다. 결혼식이야 신랑과 신부, 양가 부모의 행사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까.
일주일에 한번은 광교산 형제봉의 로프를 잡아보자는 다짐을 한 지가 1년이 넘었다. 지난주 산행 때는 진달래가 만개해 즐거웠다. 올해는 더 붉게 보이고 이내 활활 분홍색 연기로 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그 열기가 마치 임진각에서 개성을 향해 보내는 비닐풍선과 흡사하다. 각종 전단과 달러를 함께 싣고 날아가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리고 형제봉 가는 길 중간에 만나는 소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가 반갑다. ‘굽은 소나무 고향지키고 못난 자식 종신(臨終)한다’는 말이 있듯이 평범한 나무들이 늘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고맙다.
그리고 보니 형제봉이 있는 광교산을 이리저리 잘게 쪼개어 오르내린지 5년이 된듯한데 그동안 이들 나무와 풀과 돌과 바위는 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나무와 돌은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고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등산로도 굽은 그 모습 그대로 세월 속에서 영글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더구나 형제봉 두 개 정상을 지키는 바위와 소나무의 절묘한 융합을 보라. 이것은 무생물 바위와 생명체 소나무의 만남으로는 표현이 부족하다. 지구의 탄생과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된다.
사실 늦은 봄에도 찬바람이 부는 형제봉 정상의 메마른 바위틈으로 날아든 수천 수만 수억의 소나무 씨앗 중 대략 20여개가 살아남은 것 같다. 혹시 조선초기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의 후손이 한 10대 정도를 이어가는 것은 아닐까? 소나무는 안식처를 얻고 바위는 생명을 간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소나무 씨앗이 바람에 날아와 안착한 경우보다는 일단 바위에 거처를 정한 소나무의 강인한 씨앗을 되뿌려서 오늘의 ‘바위소나무’군락을 이룬 것이리라. 그리고 저 허리 굽은 소나무는 나이 200이 넘어 1794년부터 2년간 팔달산 자락에 화성 성곽 공사하는 모습을 지켜 보았을 것 같다.
광교산을 오르는 모든 이들이 평생 함께할 상대는 지금 같은 길을 가는 동료는 물론이겠지만 오늘 만나고 다음 주에 다시 보게 될 저 등 굽은 소나무를 포함한 광교산의 모든 자연인 것이다. 그리고 풍상에 단련되고 몸이 단단해진 노송들은 매주 산을 오르는 건강한 시민보다 더 오래오래 광교산을 지키며 묵묵히 우리 후손의 인생까지 자자손손 인도할 것이다. /이강석 공무원
▲경기도청 언론담당관 ▲경기도청 대외협력담당관 ▲체육진흥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