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그를 만난 것은 신입사원 교육을 받던 날이었다. 제대 후 서울로 올라와 사회에 첫 발을 내딛던 때였다. 출퇴근 시간이면 버스 안에서 그를 종종 만났으나 서로 말은 없었다. 그는 평소 말은 적은 편이었으나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언제나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다. 내가 바쁜 일로 밤샘을 하던 어느 새벽이었다. 그날따라 당직이었던 그는 창문으로 비추는 불빛을 보고 확인 차 왔다고 하면서 책상 위에 널려 있는 서류를 만지작거리다 도와 줄 것이 없냐고 물었다.
그는 의자를 당겨 내 곁으로 바싹 다가앉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야 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 이라고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우리는 아주 가까워 졌는데 얼마 안 돼 그는 내가 있는 부서로 옮겨와 같이 근무를 하게 됐다. 그는 급한 일 일수록 침착하고 신중하면서도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했다. 하지만 그런 장점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나타내 보이기를 꺼려했으며 마음은 언제나 겸손하고 진실했다. 그의 생활은 항상 바빴지만 매우 부지런 했다. 그해 가을 어느 날, 전철 안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 그의 자택을 가게 됐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빛 바랜 오동나무 장롱 한 개와 서재가 방을 절반이나 차지하고 있었다. 그 장롱을 가리키며 부친께서 손수 만든 것인데 지금도 집안의 보물처럼 여긴다며 문짝을 어루만지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진지했다. 그가 자란 과정이나 학창시절의 이야기는 나와 닮은 것이 있어 시간이 빨리 가는 줄을 몰랐다. 내가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저녁밥상이 들어 왔다. 뚝배기에 담긴 된장찌개는 일미였다. 소박했지만 친절한 대접은 일류 음식점에서 먹어본 비싼 음식보다도 더욱 입맛을 돋우었다.
그의 생활은 매우 검소했으며 때 묻은 서재에는 강한 학구열의 흔적이 그대로 서려 있었다. 그동안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노력을 하여 지난달에 대학원을 졸업했다고 했다. 나는 그의 모든 것을 보는 순간 어릴 때 시골에서 텃밭에 가꾸던 감자가 생각났다. 이른 봄에 밭을 갈고 심은 감자는 한 달쯤 지나서야 눈에서 돋아난 여린 싹이 온 힘을 다해 흙덩이를 뚫고 나와 여름철에는 무성한 잎사귀 사이로 보라색 또는 흰색의 작은 꽃을 피운다. 감자의 꽃은 장미꽃처럼 화려하거나 그윽한 향기를 내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가을 들판을 물들이는 국화꽃처럼 절개와 평화를 상징하는 꽃말을 지닌 것도 아니다.
오직 무더운 여름동안 한줌의 흙 속에서 자신을 들어내지 않고 뿌리를 내려 포기마다 탐스런 결실을 맺는다. 이렇게 자란 감자는 옛 부터 기근 때 구황식물로 널리 쓰여 왔다. 요즘 순간적인 만족을 추구하려 애쓰는 일부 명사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을 볼 때 마다 주어진 여건을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언제나 큰일보다는 작은 일에 화려함 보다는 소박한 곳에서 말없이 꿈을 가꾸던 그를 만남은 어쩌면 그 일터에서 얻은 큰 선물이자 보람으로 지금까지 나의 삶 깊은 곳에 남아 있다. /고중일 수필가
▲ 강원도 철원 출생 ▲ 방송통신대 행정학과 졸업 ▲ 수필로 등단 ▲ 문학시대 동인 ▲ 한국문인협회 회원 ▲ 경기도신인문학상, 성남문학상 수상